[窓]이제 울지 않는 ‘꼬마 베토벤’

  • 입력 2008년 11월 12일 02시 56분


조부모와 정부보조금 생활

자원봉사자 만나 음악 입문

“베토벤 같은 음악가 될래요”

지난달 12일 전남 화순군 화순읍 대리의 한 작은 교회.

무대에 선 해성(가명·11)이는 플루트도 잡지 못할 정도로 떨렸다. 모두 자신만 쳐다보는 것 같아 도망치고 싶었다. ‘왜 처음에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고 레슨을 빠졌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나 천만다행이었다. 큰 실수 없이 두 곡이나 연주했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난 뒤 활짝 웃으며 할머니 품에 안겼다.

“할머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꼬마 음악가’ 해성이는 화순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산다. 어머니는 해성이가 태어난 지 100일도 못 돼 집을 나갔고, 아버지마저 몇 년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최근엔 할머니도 지병이 악화됐다.

해성이네 세 식구가 한 달에 받는 돈은 국민기초수급 15만 원과 정부 보조금 약간. 좋아하는 축구공은 살 엄두도 못 낸다.

해성이가 플루트를 처음 잡게 된 건 2006년 8월. GS홈쇼핑 후원으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에게 악기를 제공하고 레슨까지 해주는 기아대책 ‘행복한 홈스쿨’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해성이의 레슨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화순읍에서도 외곽지역에 살기 때문에 순수 자원봉사로 레슨을 해줄 선생님을 구하기 힘들었다.

몇 달간 수소문한 끝에 광주에 있는 선생님을 구했지만, 이번에는 해성이가 문제였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성격이 산만한 ‘투덜이’ 해성이는 레슨을 빠지고 도망 다니기 일쑤였다. 그때 김윤미(38·여) 선생님의 눈에 해성이는 음계 이름을 외우는 것도 벅차 보였다. 그러나 선생님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 끈질기게 설득했다.

김 선생님은 “저도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해성이에게 애착이 많이 갔다”며 “내가 음악을 통해 받았던 위안을 해성이에게 전해 주고 싶었다”고 그때를 돌아봤다. 2007년 말 결국 해성이가 달라졌다. 선생님은 “원래 영리한 데다 음악적 감각이 뛰어나 진도가 다른 아이들보다 2배 이상 빨리 나갈 정도”라며 “다소 거칠던 해성이의 성격도 놀랍도록 차분해졌다”고 전했다.

해성이는 가장 닮고 싶은 음악가로 베토벤을 꼽았다. 그는 “나도 열심히 연습해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베토벤 같은 연주를 해 드리고 싶다”며 수줍게 웃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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