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아빠 선생님이 생겼어요”

  • 입력 2008년 11월 12일 06시 35분


‘도심 속 미니학교’ 안동 영호초등교 특별한 사제지간

“2008학년도 1교원 5학생 사제 결연으로 한 가족이 되어 행복한 학교, 오고 싶은 학교가 되도록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경북 안동시 옥야동 안동영호초등학교의 교실 입구에는 이 같은 ‘결연 약속장’이 붙어 있다. 교사와 학생이라는 ‘딱딱한’ 관계를 넘어 가족처럼 학교생활을 하겠다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약속이다.

안동시내 학교지만 전교생은 70명. 10년 전만 하더라도 전교생이 1000여 명이었으나 외곽지에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서면서 도심이 공동화돼 학생 수가 급격하게 줄었다.

“작은 학교에서만 가능한 게 무엇일까 고민하다 ‘가족 같은’ 학교를 만들어보자고 했습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부모와 똑같은 심정으로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주고 학생들은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따뜻한 분위기를 느끼도록 해보자는 것이죠.”

9월 부임한 권도현(57) 교장은 “5남매가 생겼다”며 이렇게 말했다.

교장과 교감을 포함한 교원 14명은 지난주에 전교생을 5명씩 나눠 ‘14가족’으로 결연한 뒤 결연 약속장을 함께 썼다. 가족 이름도 선생님과 아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웃음 가족’, ‘무지개 가족’, ‘병아리 가족’ 등으로 지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학생들도 차츰 좋아했다. 5학년 최지혜(12) 양은 “학생 수가 적어도 친한 친구와 친하지 않은 친구가 있는데 가족이 되니까 느낌이 많이 달라졌다”며 “새로 생긴 동생과 오빠에게 잘하면서 재미있게 학교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11일에는 결연 후 처음으로 14가족이 모여 ‘꿈’을 주제로 마음껏 이야기를 나눴다. 학생들은 요리사, 유치원 교사, 교장, 곤충학자, 간호사, 경찰, 군인 등 다양한 꿈을 얘기했다.

4학년 이건희(11) 군은 “전에는 큰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그냥 부러웠는데 지금은 동생과 누나들이 많이 생겨 학교가 꼭 집 같다”며 웃었다.

교사들의 마음가짐도 남다르다. 학생들과 더 자주 이야기를 나누면서 고민을 들어주거나 부족한 공부를 좀 더 시키곤 한다.

2004년 대구교대를 졸업한 송상호(28) 교사는 “우리 학교에서 훗날 한국을 이끌 큰 인물이 나올 수 있다는 책임과 기대 속에 아이들과 얼굴을 마주 한다”며 “학생 수가 많으면 자주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마음뿐인데 지금은 마음까지 나눌 수 있어 평소 하고 싶던 교육을 실천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14가족은 조만간 학부모들과 함께 학교 근처 산으로 나들이를 갈 예정이다.

전교어린이회장인 6학년 권유나(13) 양은 “학생 수가 적어 학교가 좀 썰렁했는데 선생님들이 엄마 아빠처럼 바뀌어 아침에 학교 오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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