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게임 단속 현장, 전원 한번에 불법에서 합법둔갑

  • 입력 2008년 11월 12일 10시 25분


2006년 ‘바다이야기’ 소동 이후 한동안 자취를 감추는 듯했던 사행성 게임이 새로운 형태로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은 더욱 교묘해진 수법으로 단속을 피하고 있다.

불법 사행성 게임을 하고 있다가도 단속반이 떴다는 소식에 게임장의 전원을 한번 껐다 켜기만 하면 게임장 내 모든 컴퓨터 게임의 내용이 불법게임에서 합법게임으로 둔갑한다. 단속반이 떠나면 또다시 불법게임으로 바뀐다. 이 같은 게임장을 상대로 한 단속은 갈수록 힘이 든다.

지난달 29일 경기도 S시의 한 게임장. 경찰관 3명, 게임물등급위원회 불법게임물감시단소속 조사관 2명과 함께 현장 단속을 나가 보았다.

오후 2시반 경인데도 23대의 게임기가 있는 게임장에 13명의 손님이 게임을 하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미사일을 발사해 목표물을 맞히는 게임이었다. 경품이 걸린 목표물에 미사일이 적중되면 그 자리에서 열쇠고리, 핸드폰 고리 등의 상품이 좌석 밑으로 떨어진다.

겉보기에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게임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이 상품을 들고 인근의 환전소에 가서 현금으로 환전할 수 있다. 돈이 걸린 게임인 것이다.

게임장에서의 게임물은 ‘전체이용가등급게임물’이 주로 유통되고 있다. '청소년이용불가등급게임물'도 있지만 실제 유통은 거의 되지 않고 있다.‘전체이용가 등급게임물’은 연령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게임물이다.

불법게임장에서 쓰이는 게임물은 ‘전체이용가등급게임물’을 변조해 도박, 환전 등 사행성 행위를 할 수 있도록 고쳐 놓은 것이다. 당국에서 심의를 거칠 때와는 다르게 도박적인 요소를 강화했다.

예를 들면 위에서 예로 든 비행기 게임의 경우 정상적인 게임기에서는 이용자가 계속 버튼을 조작하며 움직여야지만 게임이 지속된다. 게임을 하는 사람의 버튼 조작 능력에 따라 결과가 나오게 된다. 그러나 변조된 게임기에서는 버튼 조작과 관계없이 자동으로 화면이 진행된다. 게임자의 버튼숙련도와 관계없이 확률 및 운에 따른 결과를 기다리게 하는 것이다.


▲영상취재: 정주희 동아닷컴 인턴기자

이러한 형태의 불법게임물 단속에 골치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현장에 동행한 조사관 K씨는 “불법게임을 진행하다가도 단속이 떴을 때 게임운영업자가 게임장의 전원을 내렸다 다시 올리게 되면 전체게임기의 프로그램이 ‘전체이용가 등급 게임물’ 심의 버전으로 초기화된다. 때문에 단속반들은 게임물들을 감정할 때 애를 먹게 된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조사관들은 겉으로 정상적인 게임이 진행되고 있다하더라도 게임기를 들고 조사관실로 들어와 프로그램을 일일이 재점검해야하는 고충을 겪고 있다.

‘전체이용가등급게임물 개·변조’의 단속(기술적분석)은 게임물등급위원회 불법게임물감시단에서 실시한다. 게임물등급위원회는 2006년에 출범되어 이때부터 경찰과 함께 합동 단속을 했다. 이들은 보통 일주일에 2~3번 단속을 나가고 수도권을 비롯해 제주, 부산, 대구, 대전, 경북, 경남, 충북, 충남 등 전국적으로 실시한다.

전원을 껐다 켰을 때 ‘전체이용가등급게임물’로 둔갑하는 식의 개,변조는 지난해부터 등장했다는 것이 조사관들의 말이다.

<표참조>

그러나 한효민(게임물등급위원회 홍보담당)씨는 불법을 적발해도 실효가 없다고 토로했다. ‘전체이용가등급’ 취소를 위한 소송 과정 중에도 업주들은 최종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 영업을 계속하기 때문이다. 몇 개월만 영업을 해도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성인게임물들을 법적으로 금지하자 경품게임 또는 개변조와 같은 불법게임물들이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전체이용가등급게임물’들 중 개변조를 한 게임물들은 70~80%를 차지할 정도로 높다. 그 종류에는 비행기 게임, 벽돌 깨기, 영어단어맞추기 게임, RPG 게임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조사관 K씨는 프로그램 소스가 없는 이상 변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게임물 개변조는 영업자가 아닌 그 게임물을 개발한 업체에서 한 소행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단속을 하다보면 이러한 게임물들이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 한 예로 게임에 재산을 모두 소진한 이용자들은 판돈을 마련하기 위해 절도와 같은 2차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한 씨는 허술한 법과 제도를 사행성 게임물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로 꼽았다. 미심의 불법 게임물이 단속에 걸린 경우 그에 해당하는 처벌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실제로 보면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어 게임을 이용하는 이용자들에 대한 처벌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도박 같은 경우는 이용자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다”며 “이용자까지 처벌을 한다면 사행성 게임의 공급자뿐만 아니라 수요자까지 제재하기 때문에 줄여지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전체이용가등급’의 개변조 게임물들은 ‘전체이용가등급’으로 심의 받아 일반영업장에 설치되어 불특정대상들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2차 범죄뿐만 아니라 가정파괴, 자살 등 사회에 악영향을 불러일으키는 불법게임물에 대해 강력한 제도적인 장치가 시급하다. 이러다 제 2의 바다이야기 사태가 오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정주희 동아닷컴 인턴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