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5년 전 모든 재산을 털어 넣었던 그들은 인생의 막판까지 몰렸다. 화가 치밀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각종 질병을 얻어 숨지는 사람이 속출했다. 그런데도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을 이겨 내고 새 출발을 하게 됐다.
14일 마침내 문을 여는 서울 중구 을지로6가에 위치한 쇼핑몰 ‘굿모닝 시티’ 계약자들의 사연이다.
2003년 이들은 회사대표 윤창열씨의 사기 및 자금횡령으로 대규모 피해를 입었다. 윤대표는 분양 대금 3700억원을 횡령했고 부도를 맞았다. 3400여명의 계약자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첩첩 산중이었어요. 되는 일도 없었고요. 도저히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계약자 채군자(67)씨는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 그러나 이들은 주저 앉지 않았다. 계약자들이 똘 똘 뭉쳐 마침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했다.
이들은 ‘전화위복’이라는 표현을 썼다. 피해자들은 사기를 당했을 당시에는 사무실만 임대계약했을 뿐 건물 토지에 대한 권리는 없었다. 그러나 투쟁과정에서 토지에 대한 권리를 확보해 등기까지 마치게 됐다.
피해자들은 계약자협의회를 결성해 각자의 돈을 모으고, 은행 돈을 빌려 어렵게 공사자금 을 마련해 당당한 주인으로 거듭났다.
피해 당시 3735억원을 횡령당했지만 모두가 이를 악물고 4300억원을 더 모아서 냈다. 총 8000여억원이 들어간 것이다.
이들은 2004년 7월 법정관리 인가를 받아 직접 건물을 세우기 시작해 지난 8월 마침내 점포 4천500여 개를 수용할 수 있는 지하 7층, 지상 16층 건물을 준공했다.
피해자들의 모임인 계약자협의회의 조양상(50) 회장은 "그동안의 과정을 참고 견디는 것이 힘들었다. 저같은 경우만 해도 친누나와 함께 3층 쇼핑몰을 임대계약했었다. 사기를 당한 뒤 누님은 암에 걸려 사망했다”고 말했다. 조회장은 “대부분 이런 피해를 보면 공사가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은데, 개장은 기적 같은 일"이라며 "2005년 기공식 때도 눈물바다를 이뤘는데 개장식에서도 그럴 것 같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지난 5년은 힘없는 서민들의 처절한 싸움이었다"며 "힘없는 민초들이었지만 힘을 모으니까 쇼핑몰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동대문 인근에서 30여년간 옷 장사를 하며 모은 돈과 살고 있던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은 돈을 몽땅 털어 넣었던 유병완(54)씨는 사기를 당한 것을 안 뒤 설상가상으로 직장암 판정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는 결코 포기 하지 않으며 투쟁에 나섰다. 그는 "삶의 의지를 더욱 키워 나가는 동안 병세까지 호전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감격해 했다.
장기적인 투쟁과정에서 집회에서 만난 가족들이 사돈으로 맺어지는 등 기이한 인연도 생겨 났다. 피해자 강모씨가 매일 집회에 나가는 동안 이를 보다 못한 딸이 아버지를 돕기 위해 함께 나섰고 역시 집회에 나온 피해자 김모씨와 인연이 닿아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집회 도중 쓰러져 숨지는 피해자가 속출하는 등 아직도 당시의 상처는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이 같은 과정에서 사기사건의 주범인 윤창열 전 대표가 1천200억원에 달하는 차명재산을 계약자들에게 돌려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10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그는 조회장의 잦은 면회와 설득으로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그가 차명계좌로 숨겨 놓은 재산은 피해를 입은 계약자협의회가 끝까지 추적해 거의 다 밝혀진 상태다.
2003년 6월 결성 당시 회원의 80%가량이 남아있는 굿모닝시티 계약자협의회는 이제 이 곳을 새로운 쇼핑명소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앞으로 부당한 비용을 발생시키는 조직폭력배와의 유착과 같은 폐단을 근절해 인근 쇼핑몰보다 관리비를 50% 이상 낮추겠다는 설명. 모든 점포에서 온.오프라인 판매를 병행할 계획이다. 조회장은 “앞으로 이 곳을 동양최대의 쇼핑몰로 키우겠다. 3년안에 임대료가 없는 쇼핑몰로 변화시키겠다”고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굿모닝시티에는 의류.액세서리.잡화 전문점과 소형 디지털기기 매장, 대형사우나 등이 입주하는데, 현재 입점률은 77.2%다.
지옥 같은 어려움을 뚫고 나온 이들은 최근의 경기 침체 속에서 매장을 오픈하면서도 희망과 기쁨에 들떠 있다. 불가능처럼 보인 일을 해낸 이들의 자신감이었다.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shk9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