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석-조개 만지고 주무르고…
어린 다윈이 옆에서 노는 듯
국내서 죽은 갈라파고스거북
박제로 만들어져 일반 첫 공개
개관을 하루 앞둔 13일 경기 과천시 국립과천과학관의 특별전시실. 찰스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다윈 특별전이 관람객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다윈과 그가 주창한 진화론의 이모저모를 쉽고 재미있게 알 수 있도록 꾸며진 이번 특별전은 관람객이 총 14개 영역으로 구분된 전시장을 둘러보도록 구성됐다. 진화론의 형성 배경과 요점이 날실과 씨실처럼 세밀하게 엮여 있다.
○ ‘다윈의 놀이터’에서 맘껏 놀아요
학자들 사이에서 진화론은 생물학뿐만 아니라 근대 문명의 전환점으로 평가 받는다. 철학자, 종교인, 공학자는 물론 정치 이론가 카를 마르크스도 진화론에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진화’라는 개념은 당대의 사상 체계를 바꾼 일대 사건이었던 셈이다.
이번 전시회의 가장 큰 특징은 진화론의 실체와 다윈의 생애를 관람객이 ‘손끝’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다윈의 놀이터’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전시 영역이 대표적이다. 모든 관람객은 암석, 조개, 딱정벌레를 열정적으로 수집했던 어린 시절의 다윈 곁에 앉은 것처럼 전시물을 마음대로 주무르며 살펴볼 수 있다.
전시장에 나오는 암석, 조개는 사실 값이 비싸다. 많은 과학관이나 자연사박물관에서 파손을 우려해 전시물을 유리상자 안에 넣어두는 이유다. 주최 측은 “위대한 발견의 바탕이 된 다윈의 어린 시절을 관람객이 생생히 느끼는 데 촉각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다윈이 탐사한 갈라파고스 제도의 핀치새 부리를 묘사한 나무집게는 특히 눈길을 끈다. 관람객이 직접 조작하도록 한 이 전시물은 ‘손끝’ 관람의 백미다.
핀치새는 같은 종인데도 섬마다 다른 먹이의 모양과 굳기에 따라 부리 형태가 제각각이다. 먹이 경쟁과 환경 때문이다.
관람객이 직접 밤, 호두, 콩, 구형(球形) 스펀지를 여러 모양의 집게로 집어 올리다 보면 이 같은 생물학적 분석이 절로 머릿속에 들어온다. 크고 딱딱한 씨앗을 먹기 위해 육중한 부리를 가진 큰땅핀치, 작은 곤충을 잡아먹기 좋도록 가늘고 뾰족한 부리를 가진 휘파람핀치의 진화 원인을 깨달을 수 있다.
보호색을 가진 곤충이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 전시 영역에서는 나방 모양의 자석을 숲이나 덤불 그림 위에 붙여 볼 수 있다. 오레오피테쿠스에서 크로마뇽인으로 이어지는 인류 진화를 묘사한 모형은 가운데에 관람객이 지날 수 있는 큰 구멍이 뚫려 있어 키, 신체 형태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 놓치기 아쉬운 전시물 한가득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보물’도 많다. 갈라파고스 코끼리거북의 박제가 대표적이다. 국내에 들어온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죽은 뒤 박제로 만들어져 이번에 처음 공개된다.
200만 년 전 살았던 나무늘보의 일종인 메가테리움의 갈비뼈 화석과 원시 물고기인 실러캔스의 화석 등도 놓쳐서는 안 될 전시물이다. 메가테리움은 몸길이가 6m에 이르렀던 대형 포유류이며 실러캔스는 수백만 년 전 멸종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생존이 확인된 원시 어류다.
종의 기원 초판의 복사본과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된 다윈 관련 서적도 눈길을 끈다. 다윈의 진화론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한성순보도 전시돼 있으며 영국 켄트 주에 있는 다윈의 서재를 재현한 전시장에서는 기념 촬영을 하며 19세기의 정취를 느껴볼 수 있다.
이정호 동아사이언스 기자 sunrise@donga.com
영국문화원, 전시 프로그램 ‘다윈 나우’ 첫 소개
다윈 특별전에서는 영국문화원이 세계에서 처음 공개하는 전시프로그램 ‘다윈 나우(Darwin NOW)’가 소개된다. 이 프로그램은 과거가 아닌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다윈을 조명하는 데 역점을 둔다.
‘다윈은 누구인가’ ‘종이란 무엇인가’ 등 총 14개 질문을 관람객에게 던진 뒤 그것에 대한 답을 패널 형태의 전시물에 자세히 적었다.
대답은 대단히 깊이가 있다. 예를 들어 ‘게놈은 어떻게 진화하는가’라는 질문에 ‘유전적 변이는 진화의 동력이며, 게놈에 대한 연구는 더 큰 범위의 진화 메커니즘을 밝혀내고 있다’는 설명이 따라 붙는다.
인간이 만든 음악과 진화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는 ‘음악은 우연의 산물이라는 주장과 구애 행위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함께 제시되고 있다’는 답변이 나온다.
과학계에서 쓰는 학술 용어가 많지만 진화에 관해 수준 높은 지식을 얻고자 하는 관람객에게는 제격이다. 총 14개 전시 영역 중 2번째 장소에 자리 잡고 있다.
이정호 동아사이언스 기자 sunri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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