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인 혐오 ‘제노포비아’ 퍼지는 한국사회
경제위기 - 외국인 범죄 증가 속 반감 확산
“주한 외국인 100만 시대 인권보호책 시급”
“스킨헤드족처럼 외국인을 살해하고, 심하게 폭력을 가하는 집단은 아직 없죠. 하지만 한국도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의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4년째 한국에 살고 있는 중국인 회사원 L(30) 씨.
그는 “한국인은 학력,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짱개’, ‘짱골라’, ‘중국놈’ 같은 단어를 너무 자연스럽게 쓴다”며 “이 말이 중국인을 얼마나 불쾌하게 하는지 한국인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거주 외국인 100만 명 시대를 맞아 제노포비아를 막고 건강한 다문화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생활형 범죄로 적대감 증가
많은 전문가는 제노포비아 확산의 주요 원인으로 외국인 범죄의 증가를 꼽는다. ‘외국인은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므로 차별해도 된다’는 그릇된 인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
최근 몇 년 사이 외국인 범죄 가운데 보이스피싱과 금융사기 같은 생활형 지능형 범죄가 급증했다. 생활형 범죄를 중심으로 한 외국인 지능범죄 발생건수는 2004년 1660건이었지만 지난해에는 4536건으로 2.7배 정도 증가했다.
경찰대 부설 치안정책연구소의 김윤영 박사는 “보이스피싱, 금융사기 등의 생활형 지능범죄는 소수가 아니라 광범위한 국내인을 대상으로 한다”며 “이런 범죄는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을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인과 달리 외국인에 대해선 범죄 예방과 해결에 필요한 기본적인 조치조차 취하지 못하는 상황도 시급히 개선해야 할 문제다. 서울경찰청 외사과 관계자는 “국내 장기 거주 외국인이 한국으로 귀화하기 전까지는 지문과 같은 범죄 예방 및 해결의 기본적인 데이터도 얻을 수 없는 실정”이라며 “외국인 범죄의 경우 그만큼 해결도 어렵다”고 말했다.
○ 경제위기, 외국인 차별 부추겨
중국 동포 황모 씨는 최근 서울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중국으로 돌아가라”며 한국인 동료에게 주먹질을 당했다. 황 씨는 “최근 작업장에서 한국인에게 폭행당했다는 동포가 많다”고 말했다.
경기 불황으로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반감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인력시장의 경우 노임이 10년째 일당 5만 원 수준에 머무르다 보니 외국인 노동자들을 불만의 표적으로 삼는 일이 많다.
하지만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대표인 김해성 목사는 “기업주를 대상으로 한 어느 설문조사에서 70% 이상이 ‘한국인을 구할 수 없어 외국인을 고용한다’고 대답했다”며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인이 기피하는 3D업종에 근무하며 노동력을 보완해 한국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다문화사회 교육과 제도 마련 시급
제노포비아를 막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문화에 대한 교육과 외국인 인권보호를 위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송태수 한국노동연구원 박사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고려할 때 국내 거주 외국인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갈등과 문제점이 나타나는 초기에 관련 대책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기 안산시가 다음 달 시의회에 상정할 예정인 ‘외국인 인권조례안’이 대표적 모델. 안산시는 이 조례안에 피부색, 인종, 민족, 언어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일상생활 및 공공시설 이용에 차별 및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규정을 넣을 계획이다. 또 외국인 고용 업체가 이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노력하며 종교활동 등 고유의 문화를 존중토록 하는 내용도 명시된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수원=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