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문학숲 논술꽃]속도에 몰입한 현대인의 삶

  • 입력 2008년 11월 17일 02시 49분


5분의 여유를 위한 하루의 쫓김… 왜 모두 ‘속도’에 매달리나

○ 현대인은 항상 바쁘다

치열한 시장경제 사회에서 앞서 나가려면 속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비자는 제품을 자주 교체하고, 신제품 출하 시기는 점점 짧아졌다. 첨단 기술은 쉴 새 없이 발표되어 신기술을 익히기 무섭게 또 다른 신기술이 세상을 가득 메운다. 사람들은 현대 사회의 속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앞만 보며 달려간다. 속도가 빨라지면서 사회는 크게 성장했지만, 사람들의 삶은 점점 더 황폐해지고 있다.

『속도는 기술 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의 형태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사람과는 달리 뛰어가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육체 속에 있으며, 끊임없이 발바닥의 물집, 가쁜 호흡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뛰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의 체중, 자신의 나이를 느끼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자신과 자기 인생의 시간을 의식한다. 인간이 기계에 속도의 능력을 위임하고 나자 모든 것이 변한다. 이때부터 그의 고유한 육체는 관심 밖에 있게 되고, 그는 비신체적·비물질적 속도, 순수한 속도, 속도 그 자체, 속도 엑스터시에 몰입한다. [밀란 쿤데라 ‘느림’]』

기술 혁명을 바탕으로 한 속도는 인간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다. 그러나 밀란 쿤데라의 글에서 볼 수 있듯 오토바이를 타고 속도 그 자체에 몰입한 현대인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고독하다. 두 발로 달리는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고 인생의 어디쯤을 어떻게 달리고 있는지 생각할 여유가 있지만 속도에 몰입한 현대인은 삶의 주체로 거듭나지 못한 채 바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 가질 수 없는 여유를 꿈꾸는 현대인

『어느 욕심 많은 부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돈 문제로 고민하던 부자가 지나가다가 바다를 바라다보고 있는 어부에게 못마땅한 듯 물었습니다.

“왜 고기를 잡으러 나가지 않지요?”

어부가 대답했습니다.

“오늘은 충분히 고기를 잡았답니다.”

“왜 더 많이 잡지 않는 건데요?”

“더 잡아서 무엇에 쓰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부자가 어부를 한심하게 여기며 설명했습니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요. 그러면 더 좋은 배를 사서 더 깊은 곳에 가서 더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을 테고, 나일론 그물을 사서 다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곧 배도 여러 척 갖게 되고, 결국 나처럼 부자가 될 수 있지 않습니까?”

듣고만 있던 어부가 물었습니다.

“그 후에는 무엇을 할까요?”

부자는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당신은 앉아서 인생을 즐길 수 있습니다.”

어부는 미소와 함께 시선을 바다로 돌리며 조용히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진우,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

현대인들은 속도 앞에서 늘 허둥지둥하면서도 자유로운 시간과 여유를 꿈꾼다. 5분의 여유를 위해 긴 시간을 바쁘게 보낸다. 오늘날 자신이 진정 무엇을 꿈꾸는지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현대인은 과연 무엇을 위해 이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것일까?

○ 현대인에게는 놀이가 필요하다

기계 문명의 발달 덕분에 인간은 분명 예전보다 편리한 삶을 향유하고 있다. 같은 일을 해도 예전보다 시간이 단축됐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바쁘다. 설령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주어진 여가를 능동적으로 활용하지 못한다. 정해진 메뉴얼 없이 뭔가 창조해내는 데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여가 시간에도 집단적이고 수동적인 여흥에만 빠져들 뿐 주어진 시간을 진정 자신을 위해 주체적으로 사용하지 못한다.

『기계의 생산력으로 인류에게 혜택을 준 발전된 경제 조직이 여가를 파격적으로 증대시키는 것으로 이어져야 마땅하지만 여가가 많아지면 상당한 지적 활동과 관심사들을 보유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루해지기 십상이다. 여가를 가진 인구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교육받은 인구이며, 또한 그 교육은 직접적 유용성을 가진 과학·기술적 지식뿐만 아니라 정신적 기쁨도 목표로 했음이 틀림없다. (중략)

‘무용한 지식’은 사소해 보이는 부분에서까지 개인들에게 커다란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그러한 지식의 추구를 가능케 해주는 것은 바로 사색하는 습관인데, 여기에는 게으름이 요구된다. 사람들은 게으를 수 있을 때 비로소 마음이 가벼워지고, 장난도 치고 싶어지며, 스스로가 선택한 건설적이고 만족스러운 활동들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B. Russell, ‘무용한 지식과 유용한 지식’]』

○ 느림은 게으름이 아니다

웰빙(well-being·육체적·정신적 건강이 조화를 이루는 삶을 추구하는 문화), 로하스(LOHAS·건강하고 친환경적인 소비생활을 추구하는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 열풍이 불면서 여유로운 삶을 즐기려는 현대인들이 점점 늘고 있다. 중국 고전이 다시 인기를 얻고 요가 등 다양한 정신수양 방법이 주목받고 있다. 속도 문명에 지친 현대인들의 갈망이 밖으로 표출되고 있는 셈이다.

느림은 단순히 뒤처지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느리다고 해서 빠른 속도에 적응할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느림’은 삶의 주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자기반성의 기회를 갖는 것이다.

『이제야, 내 삶의 계단을 얼마쯤 올라서서 지금 내가 선 곳이 어디쯤인가를 되돌아보게 된다. 수없이 많은 층계를 밟아 오르면서 과정을 무시하지 않고 얼마나 차근히 제대로 발을 옮겼는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다리에 힘주고 무릎을 짚어가면서 이마의 땀을 씻게 되니, 한 층 한 층 올라 딛고 서는 그 힘겨움에서 과연 얼마나 보람을느꼈었는지 이제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얼마나 비틀거렸는지, 얼마나 숨차게 헐떡이며 남을 밀쳤는지, 몇 번이나 헛디딜 뻔했는지, 또 뒤에서 남 보기에 흉하도록 갈지(之) 자로 왔다 갔다 했었는지······. 그것을 헤아리는 동안 내 그림자가 길어진다. (중략)

지금 내 삶의 층계에서는 앞으로 내 인생의 계단이 얼마나 더 많이 남았는지 헤아릴 길이 없다. 다만, 인생의 해가 지게 되면 미련없이 비켜서서 내려오게 될 것이다. 밟게 되어 있는 층계 한 단씩을 딛고 밟아 올라서면서 다리가 무겁도록 힘이 들어도, 되도록, 성실하게 내딛는 바로 그 때 그 순간에 느끼는 것이 결국 보람의 전부(全部)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유경환, ‘돌층계’]』

김은정 ㈜엘림에듀 집필위원 ‘논술독파’ 시리즈 인문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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