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사실 다른 해석… 인식의 충돌은 왜 일어날까
1. 두 개의 사례
미국과 영국의 합동군은 2003년 3월 20일 이라크를 공습했다.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세계 안보를 위협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이라크, 중국 등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석유 자원을 확보하여 이익을 얻으려는 부당한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이 승전을 선포한 뒤 미국에서 파견된 조사단은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하여 미국의 주장이 허구였음을 세계에 밝혔다.
이처럼 동일한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평가도 시대적 상황과 평가자의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삼국지’의 대표적인 인물인 조조에 대한 평가가 당대 최고의 전략가라는 의견부터, 일세의 간웅이라는 의견까지 극과 극으로 나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2. 해석과 사실 간의 관계
우리 삶은 끝없는 해석의 과정이다. 언어로 하는 대화는 물론, 비언어적인 예술품에 대한 감상까지 모두 하나의 해석이다. 과거로부터 전수된 여러 사료를 보거나, 법정 진술을 청취하는 것도 해석이다. 이 모든 해석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사실’ 혹은 ‘진실’이다. 즉, 해석의 옳고 그른가의 기준은 ‘해석과 사실이 서로 일치하는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사실과 해석이 일치하지 않고 충돌하는 경우, 혹은 동일한 사실에 대한 해석이 상이한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사실에 대한 해석이 사람에 따라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사람들의 상대성을 들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이나 가치관을 통해서 사실을 인식하고 판단하게 되는데, 각 개인의 경험이나 가치관은 그가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르다. 이 때문에 동일한 사건이나 현상이라도 각 개인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회적 인식의 차이를 들 수 있다. 각 개인은 그가 속한 사회의 가치관이나 의식을 내면화하게 마련인데, 이러한 사회의 가치관이 개인의 사실 해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유럽인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을 역사의 한 획을 긋는 대사건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콜럼버스가 발견하기 전에도 아메리카 대륙에는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으므로 ‘신대륙 발견’이라는 것은 유럽인의 시각에 지나지 않는다. 유럽 중심적 사고가 유럽인의 사실 인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셈이다.
3. 인간의 불완전성과 상대성을 극복하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다. 어떤 사건은 단독으로 발생하거나 존재하지 않고 다른 사건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인간은 부분적이고 단편적으로만 사건을 이해하고 해석한다. 자신의 가치관과 자신이 속한 사회의 이념에 제약을 받으며 사실을 해석하는 것이다. 사물이나 사실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인간이 인식의 상대성과 불완전성을 극복하고 사실을 올바르게 인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사건이나 사물을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건의 전후 맥락, 인과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사회·역사적 환경 속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자신의 인식과 사고가 불완전하고 상대적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러한 인식의 불완전성과 상대성을 넘어서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