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한 날 기뻐 잠못자고 다음날은 돈 걱정에 밤새”
低利라지만 수백만원 학자금 4년내내 대출 큰 부담
차상위 저소득층 등 혜택 받도록 정부예산 늘려야
고3 수험생 딸을 둔 이의창(52·경기 수원시) 씨의 가장 큰 걱정은 딸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아니다. 최근 경기 침체로 부인과 함께 하는 화장품 가게 장사가 안 돼 임차료도 버거운 마당에 딸의 대학 입학금과 등록금을 떠올리면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하다.
이 씨는 “딸이 의대에 가고 싶다는데 거기 등록금이 제일 비싸지 않느냐”며 “공부 잘하는 자식도 밀어주지 못하니…”라며 말끝을 흐렸다. 매년 연말이 다가오면 대학들은 다음 해 등록금 인상률을 저울질한다.
외환위기 때 못지않은 불황이라지만 올해도 10%에 육박하는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대학들의 생각이다.
▽한계 넘은 등록금=신학기마다 등록금을 둘러싸고 대학과 학생들의 갈등은 어김없이 되풀이된다.
열악한 고등교육 재정을 탓하는 대학과 대학의 재정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교육 당국 사이에서 애꿎은 학생과 학부모들은 한계를 넘어선 등록금에 짓눌리고 있다.
할머니와 둘이 사는 여대생 김모(19) 씨는 4년 치 등록금을 낼 자신이 없어 올해 전문대 조리학과에 입학했다.
주중에는 학교 도서관을 정리하면서 매달 35만∼45만 원의 근로장학금을 받고, 주말에는 예식장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학기당 330만 원의 등록금은 버겁기만 하다.
대학 등록금은 2003년(4년제 사립대 기준 545만 원) 이후 5년 만에 200만 원 가까이 올랐다. 대학들은 매년 물가인상률의 두세 배씩 등록금을 올리고 있지만 장학금 등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체감하기 어렵다.
한국사학진흥재단에 따르면 2007년 현재 사립대들의 전체 재정 규모(교비회계 기준)에서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65.7%나 된다. 하지만 사립대들이 내놓은 장학금은 등록금 수입의 16%에 불과하다.
지난해 사립대의 누적 적립금은 전년 대비 12%포인트나 늘어난 7조3000억 원에 달했다. 대학들의 적립금을 장학금으로 쓰라는 요구도 있지만 기부금에 사용 목적이 지정돼 있어 쉽지 않다는 것이 대학들의 설명이다.
▽끝없는 악순환=올해 성균관대에 입학한 김모(19) 씨는 합격 통지를 받던 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핑 돈다.
“첫날은 기뻐서 우느라 잠을 못 잤어요. 그런데 다음 날부터는 등록금 걱정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더군요.”
김 씨는 기초생활수급자인 아버지가 간신히 빌린 돈으로 입학했지만 ‘계속 대학에 다닐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괴로웠다. 뒤늦게 학교 게시판을 통해 기초생활수급자 국가장학금을 알게 된 김 씨는 서둘러 장학금을 신청했고 며칠 뒤 빌린 돈을 갚았다.
이는 그나마 돌파구를 찾게 돼 행복한 경우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닌 저소득 가정은 물론 어지간한 중산층 가정도 대출을 피할 길이 없다. 정부가 학자금 대출 이자를 지원해 주지만 학기마다 수백만 원을 4년 내내 빌린다는 것은 큰 부담이다.
연세대 영남대 등 일부 대학이 저소득층 학생을 위해 학자금 대출이자를 대신 내주고 있지만 근본 대책은 되지 못한다.
대학 총학생회 등은 등록금 동결 등을 요구하며 본부 건물을 점거하는 등 봄철이면 ‘등록금 투쟁’이 되풀이된다. 올 3월에는 대학생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이례적으로 서울시청 앞에 집결해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등록금 인상은 멈출 줄 모른다.
대학의 등록금 인상에 정부가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여론도 있지만 대학자율화 원칙 때문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선 정부의 학자금 지원을 늘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란 지적이 나온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 내년 2배로 늘어난 정부 학자금 지원 받으려면
기초생활자 학년 관계없이 신청
근로장학생 4년제大까지 확대
대학 등록금으로 인한 국민의 고통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면서 정부가 학자금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장학 지원 확대를 위해 이달 초 수정예산안을 통해 2009년 학자금 지원 예산을 당초 3687억 원보다 3738억 원 늘어난 7425억 원으로 편성했다. 올해 3687억 원보다 두 배로 늘리고 지원 대상도 크게 확대했다. 내년에 확대된 장학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는 기초생활수급자, 저소득층, 근로 장학생, 군 입대자 등이 꼽힌다.
체감 혜택이 가장 큰 대상은 기초생활수급자. 그동안 1학년만 받을 수 있었던 무상장학금이 내년부터는 학년에 관계없이 확대된다.
지원 기준은 직전 학기 평점 평균을 100으로 환산했을 때 80점을 넘기면 된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 5만2000명이 등록금 걱정을 덜 수 있게 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당초 예산 압박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 무상장학금을 2011년까지 단계적으로 늘릴 계획이었지만 등록금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면서 당장 올해 2학기에 2학년에게도 무상장학금을 지원했다.
내년부터는 4년제 대학생도 정부의 근로장학금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지원 액수도 연간 20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늘어난다.
학교에서 일정 시간 전산 업무나 행정 보조를 해주면 정부가 장학금을 지원하는 이 제도는 지금까지 전문대생에게만 적용돼 왔다.
대학마다 선발 인원이나 방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정부가 내년 지원 규모가 3만6500명이어서 원하면 대부분 근로장학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보증 장학금 대출을 받은 상태에서 군에 현역 입대하는 경우 복무 기간에는 이자를 내지 않아도 된다. 정부가 대출 이자 납입을 유예해 준다.
경기 침체 여파가 중산층까지 확산됨에 따라 정부는 소득 3∼7분위 학생에 대한 학자금 대출 이자 부담도 계속 낮출 계획이다. 교과부는 이들에 대한 대출 이자 지원을 추가로 늘려 소득 3∼5분위는 3.8%, 소득 6, 7분위는 6.3%의 이자만 내면 된다. 소득 1, 2분위 학생을 위한 무이자 혜택은 내년에도 계속된다.
학자금 대출 기준금리는 지난해 1학기(6.59%) 이후 계속 오름세를 보여 올 2학기에는 7.8%를 기록했다. 그러나 정부가 이자 지원 대상과 규모를 꾸준히 늘린 결과 실제 학생들이 부담하는 평균금리는 5.8%에서 4.5%로 떨어졌다.
“장학재단 통해 재원 다각화를”
교과부 관계자는 “내년 예산이 늘었지만 세계 최고의 대학 진학률과 높은 등록금 인상률을 감안하면 여전히 부족하다”면서 “곧 신설되는 한국장학재단을 통해 재원을 다각화하고 정부의 예산 지원도 더욱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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