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땐 코치, 끝나면 선배가 괴롭혀요”

  • 입력 2008년 11월 20일 03시 00분


■ 인권위 ‘중고교 운동부 폭력’ 실태조사

10명중 8명이 폭력 경험… 성폭력도 64%

“뺨을 때려요. 별 이유가 없어요.…작심삼일이에요. 사흘 지나면 또 때려요.”(15세 농구 선수 A 군)

“운동할 때 감독님이 수비는 이렇게 하라면서, 어떤 때는 막 겨드랑이 만지고 가슴 만지고….”(14세 핸드볼 선수 B 양).

전국 중고교 운동선수 10명 중 8명은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고 10명 중 6명은 성폭력을 겪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화여대 산학협력단과 함께 중고교생 운동선수 113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심층면접 등 ‘운동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19일 밝혔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78.8%가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44.4%는 훈련과 관계없이 욕설 또는 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답했다. 이 경우 폭력을 당한 빈도는 △일주일에 1, 2회(피해자 가운데 12.3%) △일주일에 3, 4회(7.5%) △매일(5%) 순이었다. 훈련을 받을 때는 코치와 감독이, 훈련 외 시간에는 선배가 주된 폭력의 가해자였다.

인권위의 문경란 상임위원은 “선수, 부모, 지도자들도 폭력을 훈육의 일종으로 생각하는 일이 많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비밀을 보장하고 치유 및 상담은 물론 대책까지 마련해줄 수 있는 원스톱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성폭력 피해자도 63.8%에 달했다. 유형별로는 언어적 성희롱(성폭력 피해자 가운데 58.3%), 강제추행(25.4%) 순이었다. 피해 장소는 주로 합숙소나 기숙사였으며 성폭력은 주로 친구나 선후배 사이에서 발생했다.

연구책임자인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이명선 위원은 “성폭력이 일상화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며 “일상적인 성폭력이 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인권위는 교사와 코치의 성적 농담 금지, 과도한 사적 대화 금지 등 ‘학교운동부 성폭력 예방 십계명’을 만들어 시행하는 미국고등학교체육연맹(NFHS)처럼 인권보호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인권적 관점’에 입각한 학원스포츠 정책 전환 △인권 침해 예방 및 인식 개선 등 종합대책을 관계 기관에 요구할 계획이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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