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며칠 뒤, 유행의 거리로 불리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미용실. 머리를 하려고 기다리는 여고생 서너 명이 잡지를 뒤적이며 서로에게 어울릴 법한 헤어스타일을 찾느라 자못 진지하다. 이들은 모두 얼마 전 수능 시험을 치른 고3 수험생이다.
수능도 끝나고 해서 기분전환도 할 겸 미용실을 찾았다는 유모(18·서울시 강서구 화곡동) 양은 “수험표가 있으면 30% 할인해 준다고 해서 친구들과 같이 왔다”며 “머리털 나고 처음 파마를 하려고 하는데 어울릴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요즘 여자 수험생 사이에서 최고 인기 머리 모양은 ‘공효진 스타일’ 또는 ‘황보 스타일’로 불리는 헤어스타일. 층이 지지 않게 머리카락을 자른 다음 파마를 하는 것이 포인트다. 짧은 머리의 수험생들에겐 탤런트 송혜교처럼 앳돼 보이면서도 사랑스러워 보이는 머리 모양도 인기다.
이 미용실의 한 헤어디자이너는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은 파마를 하거나 긴 머리를 싹둑 자르는 등 눈에 띄는 변화를 주려고 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남자 수험생들에겐 탤런트 장근석이나 가수 비의 머리모양이 인기다. 짧은 머리를 헤어왁스나 젤을 사용해 세우는 장근석 스타일을 머리 짧은 학생들이 선호한다면, 양쪽 머리 길이가 차이가 지게 자른 다음에 긴 쪽 머리를 반대편으로 넘기는 비 스타일은 고3이라는 특권을 활용해 머리를 제법 기른 학생들이 시도하곤 한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머리 모양을 원하는 학생들은 아예 패션 잡지나 화보를 찢어 오거나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와 ‘이거랑 똑같이 해 달라’고 요구한다. 이처럼 치밀한 사전조사를 못했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미용실에 비치된 ‘이미지북(잡지나 화보에 나온 머리 모양을 모아놓은 책)’을 보면서 헤어디자이너와 자신에게 어울리는 머리 모양을 상담하면 된다.
“머리숱을 좀 더 치는 건 어때?” “앞머리를 조금 더 올려봐.” 미용실에 함께 온 친구들이 한마디씩 던지는 평론에 마음이 약해져 계속 반영하다가 나중엔 이도 저도 아닌 머리 모양이 나와서 울상을 짓는 경우도 있다. 사공이 많다 보니 머리가 산으로 가버린 셈이다. 오랫동안 학교의 ‘두발 규정’에 맞춰 생활하는 데 익숙해져 정작 자신이 진짜로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아 겪는 해프닝이다.
올해 처음으로 수능을 치른 ‘현역’ 수험생과 달리 재수생은 미용실에 올 때도 혼자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입에서 이미 한 차례의 ‘쓴맛’을 본 재수생들에겐 수능이 끝났어도 해방감보다 ‘올해만은 기필코…’라는 부담이 더 큰가 보다. 현역 수험생이라도 대학별 면접이나 구술고사를 앞둔 경우가 적지 않아 아직 염색 같은 과감한 변화는 자제하는 분위기다.
“합격하면 하고 싶은 일요? 네일아트도 해보고 싶고 화장법도 배워보고 싶고, 또 엄마 졸라서 쌍꺼풀 수술도 받고 싶어요. 오늘요? 오늘은 구술면접 대비책 사러 서점 가야 돼요.” 친구들과 팔짱을 끼고 서점으로 향하며 유 양이 남긴 말이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