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여권 인사에 구명로비 가능성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당시 최종 의사 결정권자였던 정대근(64·수감 중) 전 농협중앙회장의 ‘입’에 검찰은 물론 정치권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정 전 회장은 세종증권의 대주주였던 세종캐피탈 측으로부터 2005년 12월에 10억 원, 2006년 2월에 40억 원 등 모두 50억 원을 받았다.
세종캐피탈 측이 뿌린 80억 원의 로비자금 중 절반 이상을 정 전 회장이 챙긴 것은 그만큼 그의 비중이 컸기 때문이라고 검찰은 보고 있다.
인수할 증권사 선정과 인수가격 산정의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었던 정 전 회장은 세종증권 인수 당시의 로비 경로와 로비 자금의 흐름을 누구보다 꿰뚫고 있는 핵심 인물이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또한 정 전 회장이 세종증권 인수 관련 정보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등에게 사전에 알려줬다고 털어놓는다면 증권거래법상 미공개정보 이용 혐의로 이들이 처벌될 수도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세종캐피탈 측으로부터 40억 원을 받은 지 불과 3개월 만에 정 전 회장이 현대·기아자동차그룹에서 3억 원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구속된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정 전 회장이 자신의 구명(救命) 로비 자금으로 이 돈을 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2006년 5월 정 전 회장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체포되자 그와 친분이 있는 옛 여권의 정치권 인사들은 검찰 측에 “불구속 수사를 하면 안 되겠느냐”고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전 회장이 서울구치소에 수감됐을 때 옛 여권의 주요 정치인이 줄줄이 면회할 정도로 정치권 인맥도 넓다.
정 전 회장은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다가 같은 해 7월 병 보석으로 석방된 데 이어 2007년 2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농협 임직원은 공무원에 준하는 것으로 볼 수 없어 뇌물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 당시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항소심에서 정 전 회장은 징역 5년형의 유죄가 선고되면서 법정 구속됐고, 넉 달 뒤인 11월 대법원에서 이 형이 확정됐다.
정 전 회장은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정권교체기에 특별사면 등을 기대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미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정 전 회장은 추가로 뇌물수수 혐의가 드러난 것에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는 24일 약 2년 반 만에 다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소환 조사를 받았다. 그의 ‘입’이 열릴지 주목된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