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가 24일 “(세종캐피탈 측의 청탁에 따라)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청탁 내용을 전했다”고 밝힘에 따라 세종증권 매각 로비 사건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노 씨가 홍기옥(구속) 세종캐피탈 대표와 정화삼 씨의 동생 정광용 씨의 부탁을 사실상 들어준 것이기 때문이다. 노 씨는 그 대가로 금품을 받은 사실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검찰은 세종캐피탈 측이 정 씨 형제에게 차명 예금통장에 입금해 건넨 29억 여 원의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정씨 형제에 건넨 29억, 성공보수금’ 규정
차명통장 통째로 넘겨 돈출처 등 은폐 기도
박연차 씨 ‘휴켐스 인수 의혹’ 수사도 탄력
▽“혐의 구체화 단계 아니다”=24일 오전 노 씨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화삼 씨의) 부탁은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전 회장에게 50억 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22일 구속된 홍기옥 대표가 2006년 경남 김해시로 내려가 노 씨를 직접 만난 사실이 알려진 뒤 의혹은 더 커졌다. 그 정도로 로비가 집요했다면 과연 아무 일이 없었겠느냐는 것.
최재경 대검중수부 수사기획관은 이날 노 씨에 대해 “수사 대상인 것은 맞다”고 공식 확인했지만 “아직 혐의가 구체화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을 아꼈다. 사건의 성격과 파장을 고려해 신중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노 씨가 세종캐피탈 측의 부탁을 받고 정 전 회장에게 청탁 내용을 전달했더라도 그 대가로 돈을 받지 않았다면 형사처벌 대상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노 씨에 대해 검찰이 ‘혐의’라는 표현을 쓴 것을 보면 노 씨의 해명이 전부가 아닐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특히 세종증권 매각 과정을 보면 로비가 결국 성공했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기 때문이다. 세종캐피탈이 정 씨 형제에게 건넨 29억6300만 원을 검찰은 ‘성공보수금’으로 보고 있다. 세종캐피탈 측은 2006년 1월 농협과 세종증권 매각 계약이 성사되자 다음 달인 2월 27일 정 씨 형제에게 돈을 건넸다.
돈을 건넨 수법도 예사롭지 않다. 세종캐피탈은 정 씨 형제에게 홍 대표 명의로 된 차명통장과 도장, 비밀번호까지 통째로 넘기는 방법으로 뭉칫돈을 건넸고, 이 돈은 세탁 과정을 거쳐 여러 갈래로 쪼개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주수도 제이유그룹 회장 수사 때 밝혀낸 수법과 닮은꼴이다.
검찰 관계자는 “그러한 수법은 돈의 출처는 물론 돈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사용됐는지에 대해서도 철저히 숨기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연차 회장 수사 본격화=24일 검찰 관계자는 “대검 중수부가 박 회장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며 수사 사실을 공식 인정한 뒤 “이번 주 안에는 소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23일까지 박 회장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꺼렸던 것에 비춰 보면 많이 달라진 분위기다.
일단 박 회장이 23일 세종증권 주식에 대한 차명거래 사실을 시인한 것이 표면적인 근거로 보이지만 수사의 단서는 충분하다는 관측이 많다.
2006년 7월 박 회장이 농협으로부터 휴켐스를 인수한 이후 농협 내부 등으로부터 특혜 매각 의혹이 끊이지 않았고 박 회장이 세종증권 주식 차명 투자로 얻은 이익을 휴켐스 인수에 사용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돼 있는 상태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