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무사히…” 떡 돌리며 배웅한 경찰

  • 입력 2008년 11월 25일 22시 01분


25일 오전 8시50분경 전남 영광군 영광읍 옛 실내체육관 공터.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문화공원에서 열리는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하려는 영광지역 농민 250여 명이 관광버스 10대에 나눠 탔다.

버스 출발 10분 전 양성진(47) 전남 영광경찰서장이 간부들과 함께 송편과 생수를 들고 버스에 올랐다. 양 서장이 "요기라도 하시라고 떡을 준비했다"고 하자 농민들은 "세상 참 많이 변했네"라며 반갑게 받았다.

이어 양 서장이 "버스에 있는 술과 시위장비는 (경찰이) 보관하고 있다 돌려드리겠다"고 하자 농민들은 순순히 응했다. 영광경찰은 이날 상경 농민에게서 소주 1상자와 깃발용 대나무 20개를 수거했다.

전남 곳곳에서 2000여 명이 서울 집회에 참석한 이날 경찰은 상경을 막지 않고 오히려 편의를 제공했다. 이날 전남경찰청이 무료로 제공한 빵과 떡, 음료수, 생수는 80박스. 200여만 원 되는 비용은 관할 서장들이 판공비로 마련했다.

그동안 대규모 농민집회가 있을 때마다 경찰은 버스와 트럭을 강제로 막고 농민은 이에 반발해 도로에 나락을 뿌리는 등 실랑이가 끊이지 않았지만 이날은 서로 인사를 나누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술과 시위용품을 수거하는 대신 떡과 음료수를 대접하자는 아이디어는 24일 경찰청 농민집회 대책회의에서 나왔다. 술 때문에 집회나 시위가 과격해질 수 있다고 보고 상경 농민들에게 미리 협조를 구해 큰 효과를 본 것이다.

'금지통고 된 집회 시위라도 지방 참가자의 상경을 막는 것은 위법'이라는 대법원 판단도 경찰과 농민간의 화해 무드에 한 몫을 했다.

김학남 전남경찰청 경비계장은 "서장들이 고속도로 나들목까지 나가 배웅하는 등 분위기가 예전과 확연히 달랐다"며 "매년 이맘때 농민 상경시위를 막느라 파김치가 됐는데 이번 농민대회를 계기로 건전한 시위문화가 정착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광주=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정영준 기자, 임광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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