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 신장 이식수술 성공
“자식들에게 해준 게 없어 늘 미안했는데…. 이렇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26일 오전 8시 반 부산 중구 대청동 메리놀병원 766호 병실. 머리가 희끗한 50대 남자가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을 앞둔 환자답지 않게 얼굴이 밝았다. 목소리도 맑았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기쁨에 찬 모습이었다.
만성신부전증에 걸린 큰아들(28)에게 신장을 떼어주기로 한 무기수 박모(54) 씨. 그는 2000년 살인죄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그의 청원을 받은 검찰이 형 집행정지 결정을 내려 이날 아들에게 큰 선물을 줄 수 있게 됐다.
▶본보 24일자 A14면 참조
살인죄 무기수 “신부전증 아들에 내 신장을…”
▶본보 25일자 A12면 참조
무기수 ‘애타는 父情’에 검찰 선처
같은 시간 반대편 큰아들의 병실. 아들의 얼굴은 창백했고 입술은 메말라 있었다. 마음은 편해 보였다. 수술실로 향할 때도 약간 긴장한 모습이었다. 큰아들은 “아버지에게 장기를 기증받을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렵겠지만 가족이 다시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전날 밤 박 씨 부자는 10분 동안 만났다. 어색함 속에 몇 분이 흘렀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할 말이 많았지만 미안해서 말문이 안 열렸다. 아들도 그랬다.
“그동안 너희들에게 고통만 안겨 줬는데…. 장기라도 네게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수술은 잘 될 거니 걱정하지 말자”라고 아버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들은 “많이 수척해 보여요 아버지. 너무 큰 선물을 줘서 너무 감사드려요”라고 답했다. 작은아들은 “한때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한순간의 실수로 수감생활을 하지만 항상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수술은 오전 8시 반부터 5시간가량 이어졌다. 박 씨의 신장은 큰아들에게 성공적으로 이식됐다.
수술을 집도한 정준헌 내과과장은 “수술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두 사람 모두 한 달 뒤면 예전처럼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회복 기간을 거친 뒤 28일경 다시 부산교도소에 수감된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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