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의 금품 수수 여부를 입증하기 위해 차명 부동산 보유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하고 있는 것은 최근 부정한 금품을 주고받는 방법이 다양해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프라임그룹의 대우건설 인수를 도와주겠다며 20억 원짜리 아파트를 지인의 처남 명의로 받은 혐의로 최근 구속된 이주성 전 국세청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청장의 뇌물 수수 수법에 대해 “혁신적이고 복잡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 명의로 부동산을 사두면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금품 제공자나 명의를 빌려준 사람이 털어놓지 않는 한 실소유주를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전 청장 사례뿐만 아니라 요즘은 수사 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금품을 전달하는 방법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압수수색과 계좌추적을 통한 전통적인 수사 기법만으로는 은닉된 뇌물을 찾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 대다수 검찰 관계자의 얘기다.
옛 세종증권의 대주주였던 세종캐피탈 측은 노 전 대통령의 고교 동창인 정화삼 씨 형제에게 차명 예금통장과 비밀번호를 통째로 건넸다. 이는 제이유그룹 주수도 전 회장이 로비 대상자에게 돈을 제공한 수법과 비슷하다. 차명 예금통장을 받아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돈을 꺼내 쓰면 이를 추적하는 데 한계가 있다. ATM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 녹화된 화면은 보존기간이 2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납품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최근 구속된 조영주 전 KTF 사장은 먼저 차명 계좌 번호를 건네면서 돈을 정기적으로 입금할 것을 요구하는 방법을 썼다. KTF의 납품업체 측은 조 전 사장이 건넨 부인의 여고 동창 이름을 받은 뒤, 그가 마치 회사에 정식으로 취직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매달 봉급 명목의 돈을 이 계좌에 송금했다.
주가 상승 요인을 미리 알려줘 거래 차익으로 거액을 받는 방식도 최근 들어 늘고 있다.
연예기획사 F사가 방송사 PD들에게 회사의 인수합병 정보를 사전에 알려준 뒤 이 회사의 주식을 싼값에 취득하게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주식을 아예 통째로 넘긴 사례도 있었다. 2002년 ‘최규선 게이트’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삼남 김홍걸 씨가 송재빈 당시 타이거풀스 사장에게 청탁과 함께 주식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검찰은 은행 개인 금고에서 주식 일정 지분의 소유자가 홍걸 씨라는 문서를 발견해 주식 제공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