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생명권은 절대적 기본권이었습니다. 그 앞에선 모든 가치가 무기력했죠. 하지만 이번 판결은 치료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인간 존엄성 측면에서 생명권보다 우선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겁니다.”
법원이 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인간답게 죽을 권리를 인정한 28일, 판결을 이끌어낸 법무법인 해울의 신현호(50·사진) 의료전문 변호사는 재판 결과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7월 법원은 신 변호사가 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연명치료 중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당시 뇌사상태에 빠졌던 김모(75·여) 씨가 과거에 치료 중단 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번 판결은 환자가 서류상으로 존엄사를 원한다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더라도 환자 가족의 진술로 미루어 본 추정적 의사표시의 효력을 인정했어요. 식물인간이 될 것에 대비해 평소 유언장을 써놓지 않은 우리의 문화적 특성을 고려할 때 합당한 판단이라고 봅니다.”
신 변호사는 이번 판결에 만족해하면서도 “이제 존엄사 논쟁의 첫발을 뗀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가족들이 환자 상태와 무관하게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치료 중단 결정을 남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존엄사와 관련된 다양한 판례를 축적해 우리 풍토에 맞는 요건과 기준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또 존엄사 관련법 제정에 앞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등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존엄사가 자칫 ‘현대판 고려장’이 될 수 있어요.”
신 변호사는 1995년 ‘호스피스 완화 의료의 형법적 연구’라는 논문으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국의료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존엄사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이번 재판도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싶다는 환자 가족들의 문의를 받은 뒤 무료로 소송을 진행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