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선 찬성 입장… “사회적 합의 있어야”
식물인간 환자 가족들 “기다리던 판결 나와”
존엄하게 죽을 권리인가, 최우선 가치인 생명권인가.
28일 첫 존엄사 인정 판결은 생명의 자기결정권과 생명권을 둘러싼 논란에 불을 지폈다.
서울서부지법 민사12부(부장판사 김천수) 재판부는 이날 판결 직후 “다른 판결과 달리 사건의 매듭이 아닌 시작이라 볼 수 있다. 존엄사와 안락사를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의료계는 이번 판결을 환영했다. 대한의사협회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것은 국가적 사회적으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주경 의협 대변인은 “환자 본인도, 가족도 연명 치료에 따른 환자의 고통이 너무 오랫동안 계속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존엄사가 인정돼야 한다는 게 의료계 입장”이라고 말했다. 의협은 그동안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에 따라 의사가 소생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내리고, 환자와 그 보호자에게 충분한 동의를 얻는다면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중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시민단체는 환자의 인권 문제 차원에서 다행스러운 판결이라는 의견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국장은 “연명치료가 고통의 기간을 늘리는 의미뿐이라면 그 치료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암시민연대도 “이미 암 말기에 접어든 경우 항암치료는 살아있는 세포까지 죽이는 등 부작용이 심해 환자의 고통만 커진다. 생명을 하루 이틀 더 늘리겠다고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를 둔 가족들도 “기다리던 판결이 이제야 나왔다”며 반색하는 분위기다.
5개월 전 출산 중에 뇌가 손상돼 식물인간이 된 아내를 돌보고 있는 박모(33) 씨는 “이번 판결은 자기호흡을 하지 못하는 연세가 많은 환자의 존엄사를 인정한 판결이기 때문에 우리 가족의 상황과는 다르다”면서도 “최선을 다해 치료를 한 뒤에도 가망이 없을 경우 환자가 더는 고통을 받지 않도록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라고 말했다.
종교계의 반응은 찬반으로 엇갈렸다. 한국기독교교단협의회 측은 “기독교에서 보는 존엄사는 그 목적이 선한 의료행위라 하더라도 인간의 생명을 인간이 종결시키는 행위는 생명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천주교는 기본적으로 존엄사에 찬성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강조했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박정우 신부는 “안락사는 안 되지만 회복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중단할 수 있다”며 “그러나 의사들이 양심과 전문성에 따라 존엄사 가능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명시적인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립암센터의 윤영호 기획실장도 “품위 있는 죽음에 국한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존엄사를 위한 사회적 공감대가 우선 형성돼야 하고 호스피스제도 정비 등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존엄사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