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교과서 뒤집어읽기]사는 듯 사는, 실존하는 인간…

  • 입력 2008년 12월 1일 02시 59분


희로애락에 빠져 한평생… 덧없이 재가 되는 인생무상

사는 듯 사는, 실존하는 인간이 되는 길은 어디에?

○ 생각의 시작

인간의 사고는 행위에 영향을 준다. 밝고 긍정적 사고를 하는 이는 능동적 행위를, 어둡고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이는 수동적 행위를 한다. 따라서 어떤 존재의 사고를 보면 그의 행위를 예측할 수가 있다.

『승상이 스스로 피리를 잡아 소리를 부니 슬피 우는 듯, 원망하는 듯한데, 형경이 역수(易水)를 건널 적 점리를 이별하는 듯, 초패왕 항우가 우미인과 이별하는 듯하니, 모든 부인들이 처연하고 슬픈 빛이 많더라. … (중략) … 승상이 피리를 던지고 말하기를, “북(北)쪽으로 평평한 들과 무너진 언덕에 석양이 시든 풀을 비치고 있는 곳은 진시황의 아방궁이요, 서(西)쪽으로 슬픈 바람이 찬 수풀에 불고 저문 구름이 빈 산을 덮은 데는 한 무제의 무릉(茂陵)이요, 동(東)쪽으로는 분칠한 성(城)이 청산을 둘렀고 붉은 널이 허공중에 있는데 명월은 오락가락하되 옥난간을 의지할 사람이 없으니 이는 현종 황제가 양귀비와 노시던 화청궁이라. 이 세 임금은 천고 영웅이라. 사해(四海)로 집을 삼고, 억조(億兆)로 신첩을 삼아 호화부귀 백 년을 짧게 여기더니 이제 다 어디 있느뇨? … (중략) … 제 낭자와 더불어 반평생을 함께 살다가 하루아침에 이별하려 하니 슬픈 마음이 곡조에 자연히 나타난 것이라.”

[국어(상) 5-⑵ ‘구운몽’]』

이 부분은 양소유가 여덟 부인과 함께 산에 올라 술을 마시며 즐기던 중에 있었던 일화이다. 승상이 갑자기 피리를 부는데 그 소리가 너무도 슬프게 들려 부인들이 그 이유를 묻자 양소유가 자신의 착잡한 심정을 설명한 대목이다. 양소유는 옛날 황제들의 폐허가 된 궁궐터와 무덤을 보고, 부귀영화가 모두 헛된 것임과 인생무상을 느끼어 슬픈 가락의 퉁소를 분 것이다. 사고가 행위에 영향을 준 것이다.

○ 다른 반응은 없을까?

삶의 고달픔을 이기지 못한 이 시의 화자는 현실을 도피하고자 하며(1연), ‘낮은 이럭저럭 지내건만 밤은 어쩌나’ 하며 고독에 몸부림치고(4연), 독한 술을 마시며 슬픔을 달래고자 한다(8연). 이 또한 상황으로 말미암은 괴로움의 정서가 행위에 영향을 준 것이다.

○ 필연일까?

그런데 우리의 실제 모습은 조금 다르다. 괴로움에 몸부림치기도 하지만 그 괴로움이 다시 일어서는 데 훌륭한 자극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행운에 기뻐하지만 그 행운이 교만하게 만들어 파멸로 이끄는 경우도 많다. 때로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하이데거라는 철학자는 ‘본래적 자기로서 사는 방법’, 곧 ‘실존을 하는 방법’ 중 하나로 ‘죽음 앞으로 미리 달려감’이라는 방법을 내놓았단다. 그렇다고 자살을 하라는 뜻이 아니란다. 누구든 ‘본래적 자기’, 곧 ‘진정한 자기’로 살고 싶으면, 예를 들어 1년이나 2년 후쯤 죽는다고 상상해 보라는 뜻이야. 그러면 비로소 정말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라는 거지. 그래서 자기가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하지 않고, 해야 할 일들을 하는 것이 ‘본래적 자기’로서 사는 방법이라는 거야.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이해하고 그것을 향해 스스로를 내던진다는 거야. 아무리 지겹고 힘든 일이라고 해도 그것을 그저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서 살면 전혀 달라지는 거지. 그러니 너도 지겹고 힘들어서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될 때마다 죽음 앞으로 미리 달려가 보아라.”

[김용규, ‘도덕을 위한 철학 통조림’중에서]』

세상의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사람의 한평생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구운몽의 작가는 양소유를 통해 인생의 유한함과 덧없음을 말하고 있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그 시간은 매우 길고 소중할 수 있다.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의 의미와 빛깔이 달라지는 셈이다. 인생무상이라는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찌 보면 위험한 일일 수 있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 보지도 않고 인생을 허무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생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비록 마지막에는 재만 남는다고 하더라도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길은 얼마나 아름다우며 매혹적인가.

정근의 청솔 아우름 통합논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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