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올림픽으로 통하는 국제환경회의 제10회 람사르 총회가 경남 창원시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 다음 날인 지난달 5일. 람사르 사무국의 영 루엘린 아시아담당관이 서울 강동구 둔촌동 습지를 전격 방문했다.
바쁜 일정에 쫓기던 람사르 아시아담당관이 규모도 크지 않은 둔촌동 습지를 방문한 것은 습지보호단체 ‘습지를 가꾸는 사람들’의 회장을 맡고 있는 최경희(71) 할머니의 편지 한 통 때문이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최 할머니는 자녀에게 번역을 부탁해가며 람사르 사무국에 편지를 쓰게 된 걸까.
“종교단체 통행권 요구로 훼손위기… 도와주세요”
람사르 전격방문 “생태보고 보전 필요” 지원 사격
○ 12년에 걸친 습지 사랑
둔촌동 습지와 최 할머니의 인연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둔촌동 주공아파트에 살았는데 아파트를 산책하며 항상 보던 습지에 강동구에서 12m 길이의 길을 만든다는 거예요. 작지만 아름다운 습지에 길을 낸다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죠.”
그날부터 최 할머니의 싸움이 시작됐다. 그는 동네 주민들과 힘을 합쳐 구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한편 서울시립대에도 조사를 요청했다. 주민들의 반대가 이어지고 둔촌동 습지가 다양한 동식물 서식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시립대의 조사 결과가 나오자 결국 구에서는 계획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습지를 가꾸는 사람들’이란 단체를 통해 ‘둔촌동 습지 지킴이’를 자청해 온 최 할머니. 둔촌동 습지가 2000년 서울시의 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되면서 한 시름 놓나 했지만 습지는 이후에도 번번이 훼손 위기에 시달려 할머니는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특히 최근에 습지 근처에 자리한 종교단체들이 습지 완충지대에 차로를 설치하게 해달라고 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일까지 생겼다.
최 할머니는 고민 끝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람사르 사무국에 편지를 보냈다.
“도심 속의 습지인 둔촌동 습지는 끊임없이 훼손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이럴 때 람사르 사무국에서 방문을 해준다면 정말 큰 힘이 될 것이다.”
이에 거짓말처럼 답장이 왔고 루엘린 담당관은 11월 5일 둔촌동 습지를 직접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루엘린 담당관은 “도심 습지는 환경보전을 위해서도 꼭 지켜야 하며 청소년들을 위한 귀중한 학습장이기도 하다”며 도심 속 습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또 다른 기쁜 소식이 찾아 들었다. 강동구가 최근 “종교단체의 통행권을 인정하라”는 고등법원의 화해권고 결정에 이의신청을 한 것. 재판 진행 상황을 계속 지켜봐야 하지만 일단 화해권고 결정의 효력은 잠정 중단됐다.
○ 생태계의 보고, 도심 속 습지
서울시는 둔촌동 습지를 비롯한 14개 지역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하천 및 습지 생태계를 엿볼 수 있는 곳은 암사동, 진관내동, 고덕동, 탄천, 방이동, 한강 밤섬, 둔촌동 등 7곳.
그중에서도 둔촌동 습지는 지역주민들의 사랑 덕에 보전이 잘되고 있다. 일자산 자락과 둔촌 주공아파트 사이에 위치한 둔촌동 습지에서는 대농갱이, 버들매치를 비롯해 통발과 생이가래 같은 희귀식물, 솔부엉이와 황조롱이의 서식이 확인되는 등 도심 속 생태 보고로 평가 받는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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