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딴 시골 마을의 A고 3학년인 김철수 군은 대학에 갈 생각을 하면 걱정이 앞선다. 성적이 뛰어나지만 고교 학비를 대기에도 빠듯한 가정 형편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철수 군은 친구 영희 양에게 ‘학자금 SOS’라는 사이트를 전해 듣고 한시름 덜었다. 사이트에 접속해 부모의 연간 소득, 가고 싶은 대학, 희망 전공, 기숙사 활용 여부 등을 입력하자 곧바로 e메일이 도착했다. ‘김철수 군이 희망하는 C대학 사회계열의 한 학기 교육비는 총 590만 원(등록금 360만 원, 기숙사비 70만 원, 식비 80만 원, 생활비 및 교재비 80만 원)으로 예상됩니다. 부모님의 연간 소득은 2000만 원으로 소득 2분위에 해당되므로 국가에서 이자 전액을 부담하는 무이자 대출로 460만 원을 빌릴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 주당 10시간(시간당 5000원) 일하면 한 학기에 근로장학금 80만 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A, B, C 민간 장학재단의 장학금 지원 조건을 충족하므로 가장 유리한 재단에 장학금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내용을 따져본 김 군은 부모님께 한 달에 13만 원 정도만 받으면 대학에 다닐 수 있을 것 같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입시 준비에 매진하기로 했다.》
“일대일 개별상담 - 저리대출 받을 수 있게”
법안 국회 통과되면 내년 2학기부터 가동
민간재단 체계적 관리로 기부금도 늘려야
교육과학기술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국장학재단이 설립될 경우 곧바로 가능해지는 ‘대학 학자금 일대일 상담’의 사례를 가상으로 만들어 본 것이다.
대학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학자금 관련 예산을 2008년 3687억 원에서 2009년 7425억 원으로 배 이상 늘렸다. 하지만 학생과 학부모들의 체감온도는 여전히 낮다. 이에 따라 학자금 지원을 위한 전담기구를 신설해 장학 사업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민간 기부금을 활성화하는 등 다양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장학재단이 해법=미국 일본 영국 등의 선진국이 대학 학자금을 전담하는 독립 기구를 운영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장학 전담 기구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교과부는 10월 ‘한국장학재단 설립 등에 관한 법률안’을 확정하고, 관련 예산 338억 원을 신청해 놓은 상태이지만 국회 공전으로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교과부는 법이 통과되는대로 이르면 내년 2학기부터 장학재단을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장학재단이 생기면 현행 학자금 체계에는 크게 두 가지 변화가 기대된다. 먼저 학자금 대출 금리가 낮아질 수 있고, 학자금과 관련된 각종 정보가 체계적으로 제공될 수 있다.
현행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은 일반 유동화증권을 활용하기 때문에 시중 금리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시중 금리가 오르면 학자금 대출 금리도 오른다.
반면 장학재단이 설립돼 재단채를 발행하고, 이를 통해 학자금 대출 재원을 마련하면 대출 금리를 최소 1% 정도 낮출 수 있다. 나아가 장학재단이 민간 기부금이나 국가 예산을 직접 유치해 학자금 대출에 사용하면 무이자 대출도 큰 폭으로 늘릴 수 있다. 장학재단이 출범하면 함께 가동될 ‘학자금 SOS’ 서비스를 통해 학생 개개인에게 맞는 학자금 마련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다.
▽민간 기부금도 늘려야=기부 문화가 뿌리 내린 선진국의 경우 대학 학자금에서도 민간 기부금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카네기재단, 록펠러재단 등 선진국의 각종 민간재단들은 대학을 설립하거나 유수 대학을 지원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학생들의 학비 부담을 낮춰주는 한편 다양한 장학금으로 학생들을 직접 지원한다. 이런 배경에는 교육 장학 사업에 대한 사회적인 존경과 더불어 민간 기부자에 대한 다양한 혜택도 뒤따르기 때문이다.
정부나 장학 전담 기구가 나서서 민간재단의 장학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학생들에게 딱 맞는 장학금을 연결해 주는 것도 성공의 비결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민간 장학재단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나 정보 제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기금 규모가 100억 원이 넘는 대규모 국내 민간 장학재단은 86곳이다. 이 가운데 ‘삼성 고른 기회 장학재단’ ‘관정 이종환 교육재단’ ‘서울대 발전기금’ ‘롯데 장학재단’ 등은 기금 규모가 1000억 원이 넘고, 매년 수십억 원씩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재단은 장학생을 선발하고 지원하는 절차가 각기 달라서 수요자로서는 일일이 정보를 찾아다니기가 쉽지 않다.
기부자들의 애로 사항도 만만치 않다. 사재를 들여 장학금을 기부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직접 재단을 설립하거나 기금을 관리할 여력이 없을 경우에는 기부할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또 기부 소식이 세간에 알려지면 여기저기서 기부 요청이 쇄도하는 것은 물론 괴롭히는 경우도 있어 기부를 꺼리게 한다. 이에 따라 민간 장학재단의 각종 정보를 통합해 제공하고, 기부를 원하는 이들의 사재를 받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런 시스템이 마련되면 개인이 출연을 약속한 사재를 장학 사업에 직접 활용할 수도 있고, 대기업들이 사회 환원 차원에서 출연하기로 한 재산도 집행하기 쉬워지는 등 다양한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차동 교과부 인재육성지원관은 “장학재단 설립을 서둘러 이르면 내년 2학기부터는 학생들이 혜택을 보도록 노력하겠다”며 “민간 기부자의 뜻을 장학사업 운영에 최대한 반영하고 기부자에게 사업성과를 정기적으로 보고하는 등 기부자 예우 문화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 각 대학 눈길 끄는 학자금 지원 ▼
고려대 - 장애학생에 반액 혜택
연세대 - SOS 학생에 긴급 지급
한국성서대 - 4년 동결 ‘단일등록금’
정부의 학자금 대책 못지않게 각 대학이 재학생들을 위한 학자금 지원을 늘리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대학마다 갖가지 대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성서대의 단일등록금제. 용어 자체가 생소할 정도로 한국성서대가 2001년부터 유일하게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단일등록금제는 1학년 1학기 때 낸 등록금을 4년 동안 똑같이 내는 것으로, 군 입대 등으로 휴학을 했을 때는 복학하는 학년이 내는 등록금을 내면 된다. 한국성서대 관계자는 “물가가 올라도 등록금은 그대로여서 실질적으로는 등록금 인하 효과를 내고 있다”며 “매년 내야 할 등록금을 미리 알기 때문에 학부모들의 만족도도 높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생활비와 문화활동까지 지원하는 ‘맞춤형 장학복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학비의 경우 소득 하위 4분위 학생까지 등록금 전액이 지원되고, 소득 5∼7분위 학생들은 등록금 절반이 지원된다. 이 밖에 거주 형태와 자기계발비, 생활비 등을 고려한 표준생활비를 근거로 장학금이나 대출을 지원하는 한편 선후배 멘터링이나 해외 대학에서 공부하는 비용도 일부 지원된다.
고려대는 소외 계층 학생을 위해 틈새까지 살피는 장학 정책을 쓰고 있다. 2003년부터 시작한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이자 지원 서비스와 별도로 면학, 소망, 학생가장장학금 등을 운영하고 있다. 면학장학금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업성적을 반영해 등록금의 100%, 50%, 35%를 차등 지원하는 것. 올해 491명에게 8억5000만 원이 돌아갔다. 소망장학금은 장애 학생이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의 절반을 지원하는 것이고, 학생가장장학금은 부모가 없거나 경제력이 없으면 등록금을 전액 지원하는 제도다. 형편이 어려운데도 이런 장학금을 놓친 학생들을 위해서는 학과의 추천으로 100만 원을 지원하는 교학처 특별장학금이 마련돼 있다.
연세대와 영남대 등도 재학생의 학자금 대출이자를 지원해주고 있다. 특히 연세대가 2006년부터 운영 중인 ‘장학 신문고’는 독특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갑자기 형편이 어려워졌거나, 개발도상국의 외국인유학생 등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이 학교에 도움을 요청하면 신문고 장학금을 지원한다. 충남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고로 피해를 본 학생과 부모의 갑작스러운 이혼으로 형편이 어려워진 학생 등 많은 학생에게 힘이 되고 있다.
한신대는 등록금 관련 서비스가 빠르기로 유명하다.
신입생 합격 발표와 동시에 장학 및 대출 제도를 알리는 e메일과 문자메시지가 학생들에게 발송된다. 대출 서비스와 학교 네트워크가 연결돼 있어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학자금 대출을 신청할 수 있고, 대출 진행 현황이 실시간 문자메시지로 전달된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