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 때 처음 생긴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다. 광복과 6·25전쟁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해 2007년 현재 1만172개 점포가 있다.
이 중 갈치조림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 10여 개가 남창동 본동상가 주변에 몰려 있다.
제대로 된 입간판도 없지만 찾는 방법은 간단하다. 지나가다 남대문시장 내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물어보면 금방 위치를 알 수 있다.
미식가라면 누구나 한 번은 맛보았을 만한 곳, 남대문시장 주변의 직장인들에게는 필수 점심 코스가 된 곳, 한 번 찾으면 대개 단골이 되어 버리는 곳. 남대문 갈치조림골목은 남대문시장의 대표 골목이다.
○ 양은냄비파와 뚝배기파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5일 찾은 갈치조림골목.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이 골목 특유의 풍경이 펼쳐진다.
갈치를 담은 양은냄비와 뚝배기 수십 개가 식당 밖에 줄줄이 진열되고, 종업원들은 이를 가스불 위에 올린다. 갈치조림과 계란찜이 바글바글 끓기 시작할 무렵 사람들이 몰려든다.
일찌감치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식당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갈치조림골목의 터줏대감인 ‘희락’의 문의식 사장은 계란찜을 만드느라 바쁘게 손을 놀리며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곤 언제나 손님들이 줄을 선다”고 말했다.
희락과 남대문 갈치조림의 쌍벽을 이루는 ‘왕성식당’과 주변의 식당들도 손님으로 가득 찼다. 친구들과 함께 왕성식당을 찾은 최경남(69·서울 용산동) 씨는 “몇 해 전 처음 맛을 보고는 종종 찾게 됐다”고 말했다.
모든 집이 비슷하게 생긴 갈치조림을 내놓는다. 바닥에 큼지막하게 썬 무를 깔고, 그 위에 양념장과 갈치를 넣고 펄펄 끓인다.
다만 끓이는 도구가 차이가 있다. 가장 오래된 집인 희락은 찌그러진 양은냄비를 사용해 빠른 시간 내에 끓인다. 전남 순천 출신인 문 사장은 “어릴 적 먹던 맛을 살려서 만든다”고 했다. 중앙식당과 우리식당도 일명 양은냄비파다.
반면 희락과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연 왕성식당은 뚝배기파의 효시다. 이 가게의 문혜순 사장은 “뚝배기에 끓이면 오랫동안 따뜻하게 먹을 수 있다”며 “경북 봉화 출신인 시어머니로부터 전수받은 대로 만들고 있으니 경상도식 갈치조림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5, 6집은 왕성식당처럼 뚝배기를 사용한다.
○ 1988년 올림픽 거치며 골목 형성
많고 많은 음식 중에 왜 하필 갈치조림을 하는 골목이 생긴 것일까.
이 일대는 갈치 집들이 생기기 전부터 원래 식당가였다. 분식집과 백반집, 삼계탕집 등 종류도 다양했다.
그러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즈음해 희락과 왕성식당이 갈치로 메뉴를 특화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갈치 값이 그리 비싸지 않아 서민들도 어렵게 않게 갈치를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두 집의 음식 솜씨는 언론 보도와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고, 주변의 가게들은 하나둘씩 갈치 집으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1990년대 들어서는 인근 회사원들에게 점심 코스가 됐다. 요즘에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많이 찾는다. 매콤하면서도 개운한 맛 때문에 특히 여자 손님이 많다고 한다. 일본 언론에도 소개가 되면서 일본 관광객들의 발길도 늘었다.
외부에서 오는 손님들은 90% 이상 갈치조림과 담백한 계란찜을 주문하지만, 시장 내 상인들을 위해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등도 판다. 갈치조림은 2인분에 1만2000원, 계란찜은 4000원가량 한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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