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민영화 신호탄” 주장
정부 “민간기업 시판 금지” 반박
가뭄 등 비상급수용 활용 가능
10여개 지자체 당장 생산 채비
《수돗물을 페트병에 담아 판매하는 방안을 두고 여전히 논란이 뜨겁다. 수돗물을 페트병 등에 담은 ‘병입(甁入) 수돗물’ 판매 허용 방안 등을 담은 수도법 개정안이 지난달 국무회의 심의·의결을 거쳤고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돼 있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병입 수돗물 판매가 수돗물 민영화의 신호탄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반면 정부는 판매를 통해 수돗물에 대한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
○ 먹는 샘물보다 저렴한 가격 공급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과 물 사유화 저지 공동행동, 서울사회공공성연대회의 등은 최근 수도법 개정안에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비판의 핵심은 병입 수돗물 판매가 물 민영화의 사전 조치라는 것. 이들은 “단지 병입 수돗물을 판매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정부가 다양한 경로로 추진하고 있는 지방상수도에 대한 민간위탁 정책에 힘을 실어줄 것이기 때문에 수돗물 민영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병입 수돗물의 가격도 일반 수돗물에 비해 수십∼수백 배에 달하기 때문에 수도 사업자는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병입 수돗물 판매에 집중하게 되고 이로 인해 전체적인 수돗물 비용이 증가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와 수자원공사 외에는 병입 수돗물의 판매가 금지돼 있어 수도사업 운영을 맡은 민간기업은 병입 수돗물 판매가 불가능하다며 민영화와는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또 병입 수돗물의 가격을 관망 수돗물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경쟁 관계에 있는 먹는 샘물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정부는 병입 수돗물 판매는 관망 수돗물 공급의 보완적 방법이며 휴대하기 편하게 하고 가뭄 등 재해 발생 시 비상급수용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 ‘수도꼭지 물’과 병입 수돗물은 같을까?
지금은 같은 물이 아니다. 서울시가 만들고 있는 ‘아리수’는 강북정수장에서 생산된 수돗물에 염소 냄새를 제거하고 맛을 향상시키기 위해 활성탄을 이용해 한 차례 더 처리과정을 거쳐 페트병에 담는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수돗물은 정수장에서 생산된 뒤 관망을 거쳐 1, 2일 지나 소비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염소의 농도가 낮아진다. 그런데 정수장 수돗물을 바로 페트병에 담아 밀폐하면 고농도의 염소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냄새가 심해 그냥 마시기 어렵다.
하지만 개정된 수도법에는 수도관을 통해 공급되는 수돗물과 병입 수돗물의 처리 과정이 동일해야만 판매가 가능하도록 규정했다. 관망 수돗물을 한 차례 더 처리해 페트병에 담을 경우 페트병에 담긴 물은 먹는 물로,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은 청소나 빨래하는 허드렛물 정도로 생각해 수돗물에 대한 불신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화학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공기 중에 일정 시간 노출시켜 염소를 자연 증발시키는 방식으로 농도를 낮추는 것은 ‘재처리’로 보기 어려워 판매를 허용하기로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병입 수돗물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지방자치단체들은 정수 처리의 고도화를 앞당겨야 할 것이고 이는 수돗물의 품질 향상과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마실 기회 늘려 불신 해소 기회로”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병입 수돗물 판매를 통해 수돗물을 마시는 기회를 늘려 신뢰 회복의 기회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경쟁 관계에 있는 먹는 샘물이 시중에서 주로 500원 이상(500mL 기준)에 판매되고 있는 반면 병입 수돗물의 예상 공급가격은 150∼200원이어서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수자원공사나 서울시 부산시 대전시 인천시 등은 이미 각각 연간 300만 병 이상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는 등 10여 개 지자체가 당장 대규모 생산 및 판매가 가능하다. 또 차게 해서 마시면 먹는 샘물과 맛의 차이도 거의 없는 것으로 보고 있어 판매가 시작되면 시장에서의 반응도 좋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환경부 김종천 상하수도정책관은 “병입 수돗물은 원가에 가까운 가격으로 물을 공급해 국민에게 마실 기회를 늘려 주고 이를 통해 수돗물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려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