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양은 "나는 왜 이렇게 밖에 못 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살기가 싫어요…"하면서 한숨을 내쉬더니 "이번 겨울방학엔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려고요"하고 힘없이 말했다.
경제 위기에 휘청거리는 건 부모뿐만이 아니다. 자녀들도 힘들어하는 부모를 보며 함께 우울감에 시달린다.
기자는 서울 은평구 Y중학교의 한 반을 찾아가 학생 3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개별 인터뷰를 해보았다.
설문조사에서는 74%(23명)의 학생이 최근 부모님이 금전 문제로 걱정을 한다고 응답했다. 그 중 78%(18명)이 그로 인해 자신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대답했다.
부모님이 금전적인 문제로 걱정할 때 기분을 묻는 질문에는 대부분 "슬프다" "우울하다" "짜증난다" "살기 싫어진다" 등 좌절감을 표현하는 대답 일색이었다.
● "난 왜 이렇게 밖에 못 사나"
강승연(가명·16·여) 양은 "옷이나 신발도 사고 싶고 시내로 놀러 가고도 싶은 것을 참아야 하니 짜증이 난다" 며 "왜 이렇게 태어났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강 양은 이미 학원을 그만 두었고 방학 때는 아르바이트를 해 용돈을 벌 생각이다. 강 양은 "식당에서 서빙을 하면 시간당 4000원, 옷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면 시간당 5000원을 벌 수 있다"며 벌써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워놓았다.
이동민 (가명·16·남)군은 "돈을 안 쓰려다 보니 밖에 나가기 싫어진다"면서 "용돈을 달라고 하기도 눈치가 보여 집에서 게임을 하고 노는 시간이 늘었다"고 말했다. 이 군처럼 대인기피 현상을 보이거나 게임을 한다는 대답도 34%(8명)나 됐다.
이 밖에 학생들은 "어머니가 가계부를 적으며 한숨을 쉬신다" "아버지가 주식이 반 토막 났다고 걱정하신다"고 말해 부모가 느끼는 스트레스가 자녀들에게도 전가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묻는 질문에 "용돈을 아껴 써야겠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등 가족 전체를 덮친 경제 위기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한 구체적 결심을 보여주기도 했다.
● 10대 우울증 증가율 가팔라
가족이 경제 위기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자녀는 부모보다 부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막연한 불안감은 의외로 더 클 수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부모가 느끼는 불안감은 자녀들에게 증폭되어 전달된다"면서 "1930년대 미국 대공황이 아이들 발달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뇌기능에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도 있다"고 설명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우울증 환자는 모두 52만 5466명으로 최근 5년간 32.9%나 증가했다.
특히 10대 우울증 환자가 67.3%나 증가해 70세 이상(78.3%)을 제외하고는 가장 가파르게 증가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을 통제할 수 없는 10대들이 외부 상황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안동현 한양대 신경정신과 교수는 "10대들이 느끼는 스트레스 원인 1위는 학업, 2위는 가족문제"라며 "아직 독립적인 성인이 아니므로 가족이 처한 위기나 문제에 대해 더 민감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가족 구성원으로써 스트레스를 피해갈 수는 없겠지만 우울감이 학업을 중단하거나 탈선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부모들이 올바른 가치 판단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경임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