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홉스는 어째서 국가를 ‘리바이어던’…

  • 입력 2008년 12월 15일 03시 00분


홉스는 어째서 국가를 ‘리바이어던’이라고 불렀을까

17세기 영국은 ‘정치 실험실’ 같았다. 그 전까지 사람들은 누가 세상을 다스려야 할지 고민하지 않았다. 항상 왕이 통치를 해왔기 때문이다. 당시엔 왕도 나라를 어쩌지 못했다. 마침내 국민들은 왕의 목까지 잘랐다. 최초의 공화정은 그렇게 태어났다.

권력을 쥔 올리버 크롬웰은 고민에 빠졌다. ‘시민들은 왜 나에게 충성을 바쳐야 할까?’ 예전 왕을 섬길 때는 이런 의문을 품을 까닭이 없었다. 국민을 다스릴 왕의 권리는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왕권신수설의 입장이다.

새로운 정권은 신에게서 권력을 넘겨받지 않았다. ‘실력’으로 임금을 몰아냈을 뿐이다. 조직폭력배의 두목은 힘을 잃은 순간 부하들에게 버림받는다. 권력의 ‘정통성’은 그래서 중요하다. 왜 자신이 정당한 지도자인지 설명하지 못하면 시민들은 언제든지 정부에 맞서 들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현실주의자는 유능한 의사와 같다. 의사는 결코 헛된 희망을 품지 않는다. 현실을 있는 대로 보고 가능한 치료책을 찾을 뿐이다. 홉스는 의사와 같은 관점에서 세상을 진단하고 처방전을 내놓았다. 그는 국가가 필요한 이유를 ‘자연 상태’를 들어 설명한다.

자연 상태란 그 어떤 정부나 권력자도 없는 상황을 말한다. 만약 세상에 경찰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세상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자연법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법이란 생각할 줄 아는 머리, 이성(理性)을 말한다. 홉스는 자연법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평화를 좇아라’ 둘째, ‘모든 수단을 써서 자신을 지켜라’ 셋째, ‘서로가 맺은 약속은 지켜야 한다.’ 이 세 법칙을 지키지 않을 때 세상은 바로 혼란스러워진다.

하지만 사람들이 과연 자연법을 잘 지킬까? 한 사람이라도 평화보다 싸움을 원한다면 또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다면, 세상은 위험하고 믿을 수 없는 곳이 돼버린다.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홉스의 유명한 말은 자연 상태의 이런 모습을 나타낸다. 그 속에서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며 더럽고 잔인하다. 혼란을 막으려면 자연법을 어기는 사람들을 처벌해 줄 강력한 누군가가 필요하다. 국가는 바로 이런 필요에서 생겼다.

사람들은 스스로 계약을 맺어 국가를 만들고 고개를 조아렸다. 학자들은 이러한 홉스의 설명에 ‘사회계약설’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일단 국가가 태어나면 누구도 이에 맞서서는 안 된다. 국가가 흔들리면 무시무시한 자연 상태가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다.

국가는 리바이어던(Leviathan) 같아야 한다. 리바이어던이란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물속 괴물이다. 사람들은 리바이어던을 두려워한다. 국가는 예전의 왕이나 귀족처럼 신적이고 성스러울 필요가 없어졌다. 단지 안전을 지켜주는 장치일 뿐이기 때문이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점차 왕권신수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리바이어던’은 신을 끌어들이지 않고도 왜 절대 권력자가 있어야 하는지를 설명해주었다. 홉스는 결코 민주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왕이 다시 영국을 통치하기를 원했던 사람이다.

홉스의 사상을 뜻하는 호비즘(Hobbism)은 심한 보수주의를 가리킬 때 쓰인다. 보수주의자들은 한결같이 힘센 국가와 엄격한 법질서를 내세운다. 그러나 홉스는 권력자 자신이 아니라 ‘모든 시민들을 위해서’ 강한 정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점을 놓치는 순간 보수주의는 독재로 흐른다. 건강한 보수주의자라면 절대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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