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리와 사고]‘일관된 논리-충분한 근거’ 갖춰야…

  • 입력 2008년 12월 15일 03시 00분


‘일관된 논리-충분한 근거’를 갖춰야 논증이 바로 선다

글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3단계 과정 중 두 번째 단계에서 적용할 수 있는 기준에는 논리적 일관성, 충분성, 공정성, 중요성 등이 있습니다. 조리사가 식재료에 따라 칼을 적절히 선택해 조리하듯 글의 내용에 따라 평가 기준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논리적 일관성은 논증적 글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앞뒤 흐트러짐 없이 일관된 논의를 하고 있지 않다면 그 글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논의를 하면서 앞뒤 모순된 내용이 있는 경우와 글을 전개하면서 논지가 달라지는 경우는 논리적 일관성이 없는 글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글 안에서 모순된 주장을 하는 글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세계평화를 최우선적 가치로 놓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우리 민족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생각해 봅시다. 두 주장은 양립하기 어렵기 때문에 글이 일관성을 잃게 됩니다.

특히 어떤 제도의 장단점이나 의의, 한계를 따질 때는 양립할 수 없는 주장을 동시에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고교 평준화의 장단점을 말할 때 한편으로는 평등을 이루는 제도라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실질적 평등을 해치는 제도라고 한다면 역시 글의 일관성을 해치게 됩니다.

하나의 글에서 쟁점이 확산될 때 논리적 일관성을 지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낙태가 살인인가’에 대해서는 ‘예’라고 답해놓고 논의가 확산돼 ‘태아가 인간인가’를 문제 삼을 때에는 ‘아니요’라고 답한다면 일관성이 없어집니다.

짧은 글 안에서 논지의 일관성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의 글 안에서 결론이 바뀌어 입장이 분명치 않은 경우를 말합니다. 글을 평가하다 보면 미세하지만 결론의 강도가 바뀌는 사례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글을 시작할 땐 ‘적극 반대’의 입장이었지만 반론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점치 ‘조건부 반대’ 입장을 취하는 글이 있습니다. 반면에 처음엔 ‘조건부 반대’의 입장이었다가 결론에서는 ‘적극 반대’로 입장이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 반대의 입장이 유지됐다고 해서 일관성에 문제가 없다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적극 반대와 조건부 반대는 다른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기 전부터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결론을 세워 논리적 일관성을 지켜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충분성도 논리적 일관성 못지않게 중요한 기준입니다. 충분성은 논의를 위해 필요한 내용이 다 고려됐는지, 필요한 근거가 모두 제시됐는지를 평가할 때 활용하는 기준입니다. 논의한 내용이 모두 정확하고 적절하다 하더라도 충분성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특정 부분에 불과한 것을 침소봉대해 전체인 양 주장해도 비판받을 수 있습니다. 충분성과 관련된 논리적 오류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불충분한 자료에 기초해 일반화했기 때문에 결론을 받아들이기 힘든 경우입니다. 편견이나 고정관념 중엔 이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 많습니다.

‘근시안적 귀납의 오류’라는 것도 있습니다. 결론을 추론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을 다 고려하지 않은 경우 범하게 되는 오류입니다.

‘남자와 백인이 여자와 흑인보다 높게 집계됐다’는 통계를 바탕으로 ‘자료에 따라 남자와 백인은 경영자로 적합하지만 여자와 흑인은 경영자로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한다면 근시안적 귀납의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통계 자료가 어떤 과정을 거쳐 도출된 것인지, 그 배경엔 어떤 내용이 숨겨져 있는지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남성과 백인이 여성과 흑인보다 자기를 계발시킬 기회를 많이 가져왔습니다. 여성과 흑인이 제대로 교육받고 사회에 참여하게 된 것은 남성과 백인에 비하면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영양학적으로도 기름지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독차지해온 것은 남성과 백인입니다. 여성과 흑인이 영양을 잘 섭취하며 꾸준히 교육을 받는다면 통계의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논증에서 논거를 모두 제시하지 않았을 땐 충분성이 직접적으로 문제가 됩니다. 생리공결제 실시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보완 후 실시’를 결론으로 내린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이 때는 왜 실시해야 하는지, 또 왜 보완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모두 제시해야 합니다. 여성의 인권 보호 필요성을 제시하며 ‘실시’에 대한 근거만 제시하거나 악용의 가능성을 제기하며 보완의 근거만 제시하면 충분성의 기준에 의해 비판받게 됩니다. 이렇게 결론이 복합적 논점을 반영하고 있을 경우 특히 논거의 충분성을 잘 따져 봐야 합니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 의사소통교육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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