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고 2년 만에 졸업 → 서울대 의대 → 의사시험 최연소 합격- 병원 개업 → 이번엔 로스쿨 합격
그는 어릴 적부터 공부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랐다. 집안 일을 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공부하는 어머니가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약사인 어머니는 이 씨가 어릴 때부터 여러 대학원에서 공부를 계속해 학위를 잇달아 받았다. 이 씨는 “어머니 옆에선 공부 외에 달리 할 게 없었다”고 회상했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 욕심도 많았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항상 전교 1, 2등을 놓치지 않았다. 주요 과목에서 음악, 미술, 체육 등 예체능 과목까지 단 한 과목도 1등을 놓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체력장 전날에는 밤 12시에 아버지와 함께 학교 운동장에 나가 3단 뛰기를 연습하기도 했다. 결국 체력장에서 여학생 전체 2등을 차지했다. 초등학교 때는 컴퓨터 미술 음악 서예 태권도 합기도 테니스 등 예체능 학원을 두루 섭렵할 정도로 관심사가 다양했다. 모두 스스로 고른 학원이었다.
예체능 이외의 학과 공부와 관련된 학원을 다닌 건 중학교 때가 전부다. 과학고를 가려고 특목고 준비 학원에 등록을 했다. 그곳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일찌감치 과학고를 준비해온 아이들이 수두룩했다. 분반 시험에서 점수가 낮은 반에 배정이 된 이 씨는 학원 강사를 직접 찾아갔다. 강사에게 “수학 경시반에 보내주면 꼭 잘 해낼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리고 약속대로 처음 치른 수학경시대회에서 만점을 받았다. 이 씨는 “2∼3년 늦게 시작했다고 뒤쳐지는 게 싫어서 남들보다 하루 몇 시간씩 덜 자고 공부했다”고 말했다.
경기과학고에 가서도 전교 1, 2등을 했다. 시험 때만 되면 반 친구들이 이 씨의 공책을 베끼려고 안달이었다. “선미가 필기한 내용이 시험에 나온다”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이었다. 공부 비결은 간단했다. 수업 시간에 최대한 집중하는 것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기숙사에서 밤마다 삼삼오오 모여 두세 시간씩 수다를 떨 때도 이 씨는 12시만 되면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수업 시간에도 졸지 않고 선생님이 강조하는 내용을 잘 듣고 핵심을 요약하기 위해서였다.
이 씨의 아버지 이성영(51) 씨는 “선미는 어릴 때부터 집중력이 강해서 남보다 이해하고 배우는 속도가 배로 빨랐다”고 말했다. 이 씨는 6년 동안 배운 서예를 성적 향상의 비결로 꼽았다. 서예를 하면서 마음이 차분하고 침착해져서 시험을 치를 때 실수가 줄었다는 설명이었다.
이 씨의 부모는 항상 딸의 꿈을 묻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좋은 길을 찾아줬다. 경기과학고를 2년 만에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건 역시 약사인 아버지 덕분이었다. 과학고생은 경시대회 수상 경력을 바탕으로 2학년 때 조기졸업하고 공학 계열로 진학하는 일이 흔하다. 2학년 때 수능을 치르고 의대에 진학한 학생은 경기과학고에서 이 씨가 처음이었다.
아버지 이 씨는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과학기술부)에 문의해서 관련 법조항을 확인한 뒤 서울대 등 각 대학 의대에 조기졸업자를 위한 내신 반영기준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이 씨는 2학년 때 서울대 연세대 울산대 등 세 곳의 의대에 합격했고, 그중 서울대 의대를 선택했다.
로스쿨 시험에 도전하게 된 건 본과 4학년 때 들었던 한 강의 때문이었다. ‘의사로서의 다양한 삶’이라는 강의는 고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비롯해 방송사 의학 전문기자, 보건복지부(현 보건복지가족부) 공무원, 컨설팅 회사 등 의대 출신으로 다양한 분야에 진출한 선배들이 초대되어 각자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 씨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이었던 노태헌 판사의 강의를 인상 깊게 들었다. 올해 초 졸업 이후 개인병원을 운영하면서 본격적으로 로스쿨 공부를 시작했다. 의과대학에서 의료법을 가르치겠다는 것이 앞으로의 포부다.
의사로서 법조인의 꿈에 새롭게 도전하려는 이 씨가 남보다 빠른 삶의 속도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인생길이 때로는 무섭지 않을까. 그러나 이 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남보다 어리다는 게 장점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머리가 아직 녹슬지 않았으니 더 많은 공부를 할 수 있고, 나이 제한에 걸리지 않으니 여러 가지 길을 선택할 수 있어서”라는 이유도 덧붙였다.
최세미 기자 luckyse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