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수법’ 제공업체 대표 5명 첫 기소

  • 입력 2008년 12월 15일 03시 01분


다단계 사기 각종 증거물 아프리카 금광 발견 등을 미끼로 투자자들을 속인 신종 다단계업체가 적발됐다.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관들이 각종 증거물을 공개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다단계 사기 각종 증거물 아프리카 금광 발견 등을 미끼로 투자자들을 속인 신종 다단계업체가 적발됐다.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관들이 각종 증거물을 공개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불법 다단계 방문판매 및 유사수신 업체에 회원관리 프로그램을 공급해 온 전산업체 대표들이 무더기로 법정에 서게 됐다. 다단계업체 영업에 아이디어와 노하우를 제공하는 ‘머리’ 역할을 해 온 프로그램 공급업체 대표들이 기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피해자 11만 명, 피해금액 1조 원 넘어=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 지익상)는 다단계업체에 회원관리 프로그램을 공급하고 유지, 관리를 도와준 혐의(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방조) 등으로 P사 대표 이모 씨 등 5개 업체 대표 5명을 불구속기소하고 2개 업체에 대해 추가로 수사 중이라고 14일 밝혔다.

이번에 적발된 7개 전산업체는 704개 유사수신 및 방문판매업체에 복잡한 회원관리와 투자원리금·수당 계산, 구매물품 관리를 손쉽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공급하고 업체당 300만∼4500만 원을 받았다. 이들은 주로 다단계 판매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접근해 “회원 관리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하는 방식으로 영업을 했다.

검찰은 이들 업체의 프로그램을 공급받은 다단계업체의 영업으로 피해를 본 사람이 전국적으로 11만 명, 피해금액이 1조129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들 업체는 단순히 프로그램을 판매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다단계업체의 창업을 도와주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말했다.

전산업체와 다단계업체들은 자신들의 프로그램대로 영업을 하면 아이템에 따라서 짧게는 3개월 만에 수당 지급이 불가능해진다는 점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사전에 알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들 전산업체 외에 불법 다단계업체에 프로그램을 공급해 관리해주는 프리랜서 프로그래머가 50∼100명에 이른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정보기술(IT) 개발, 금광 채굴 투자 등 회원 모집 방법도 가지가지=다단계업체의 영업 품목이 과거의 화장품, 건강보조식품 위주에서 인터넷TV(IPTV) 셋톱박스 개발, 전력사용 절감기 판매, 불법 대부업 등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프리카 가나 지역 금광 채굴 사업 투자를 내건 한 업체는 회사 대표가 가나의 족장 등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매주 투자금의 15%를 수당으로 지급해 8주 안에 원금의 120%를 주겠다”며 3161명으로부터 178억 원을 끌어 모았다. 하지만 실제로 금광에 투자한 돈은 전체 모집금액의 10%가 되지 않았으며 130여억 원을 판매원들에게 수익금, 배당금으로 지급하는 ‘돌려 막기’에 쓴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영업 규모가 큰 상위 12개 업체 관계자 16명을 구속기소하고, 102명을 불구속기소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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