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무조건 나눔’ 할머니

  • 입력 2008년 12월 15일 06시 20분


삯바느질 80대의 ‘릴레이 선행’

‘100만 원에 깃든 노년의 사랑 나눔.’

한복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 가는 이모(80·광주 북구) 할머니는 11년 전 같은 성당에 다니던 조모(작고·당시 73세) 할머니로부터 뜻밖의 도움을 받았다. 미사 때 옆자리에 앉는 것 외에는 아무 관계가 없었지만 집안 사정으로 급전이 필요하다는 말에 조 할머니가 아무런 조건 없이 선뜻 100만 원을 내놓은 것.

그러나 안타깝게도 얼마 후 조 할머니는 위암 3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 할머니는 빌린 돈을 당장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돈을 구할 수 없었다.

발만 동동 구르다 어렵게 병상을 찾아간 이 할머니에게 조 할머니는 “죽는 마당에 무슨 돈이 필요하겠느냐. 나중에 돈이 생기면 다른 어려운 이웃에게 전해 달라”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조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한시도 이 약속을 잊을 수 없었던 이 할머니는 10년이 지난 뒤에야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

올여름 조 할머니의 막내딸을 수소문 끝에 찾아간 이 할머니는 또 한 번 감동했다. “어머니의 뜻대로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는 게 좋겠다. 10년도 넘은 약속을 지켜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돈을 극구 사양했던 것.

이 할머니는 고민하다 밤 껍데기를 벗기는 일을 하며 힘겹게 사는 같은 임대아파트의 김모(80) 할머니를 돕기로 했다. 얼굴만 알고 지내는 사이였지만 간질을 앓는 손자를 홀로 돌보며 병원비 걱정을 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100만 원을 들고 찾아간 이 할머니에게 그동안 얽힌 사연을 들은 김 할머니는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도움”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조건 없이 받은 사랑을 다른 이에게 돌려준 이 할머니는 “내 나이 팔순인데 죽기 전에 은인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마음이 깃털처럼 가볍다”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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