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 전문가들 7차례 모여 토론 결론 못내
환자수명 얼마 안남아 재판기간 단축 의도
서울서부지법이 “세브란스병원은 김모(76·여) 씨의 평소 뜻에 따라 김 씨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고 존엄사 허용 판결을 내린 것은 지난달 28일 오전.
세브란스병원은 판결 직후 곧바로 대책회의에 돌입했다. 병원 측은 종교계, 학계, 법조계, 시민단체 등 각계 전문가들을 초빙해 윤리위원회를 7차례나 여는 등 장고를 거듭했다.
하지만 윤리위원회와 외부자문단회의에서도 존엄사에 대한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대한의학회 조승렬 부회장은 “존엄한 죽음을 원하는 환자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고 찬성의 뜻을 나타냈다. 반면 연세대 철학과 김영철 교수는 “1심 판결만으로는 불충분하고 최고 권위 기관인 대법원의 의견이 필요하다”며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세브란스병원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엄청난 만큼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며 “존엄사를 인정하고 집행한 첫 사례로 남는 것은 사실 병원 측에도 엄청난 부담”이라고 전했다.
결국 세브란스병원은 기자회견 당일인 17일 오전 9시 45분 최종 회의에서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해지는 것을 방지하는 한편 존엄사에 대한 법적 기준 및 사회적 합의가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는 판단 아래 비약상고를 결정했다.
이에 대해 박창일 의료원장은 “보라매병원의 사례와 이번 사례의 판결이 엇갈리는 등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대법원의 판례로라도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환자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항소심을 통해 대법원 판결까지 가는 긴 과정을 밟을 수 없다는 점도 비약상고 결정의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기독교 재단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생명을 함부로 다룰 수 없다는 점도 이번 결정에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세브란스병원의 결정에 대해 의료계에서는 “예상된 것”이라는 반응이다. 1심 판결만으로 법원이 존엄사를 인정했다고 받아들이기엔 부족하다는 것이다.
김주경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최고 법원에서 존엄사를 인정해야 의료진도 존엄사를 결정하는 데 부담을 덜고 국민의 수용도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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