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00년 전 한국 첫 흉부외과 수술기록 발견, 환자는 이완용

  • 입력 2008년 12월 18일 02시 59분


환자는 이재명 義士칼 맞은 이완용

감정서 “왼쪽 어깨-오른쪽 등 아래 찔려” 기술

배 등 3곳 이상 찔렸다는 역사서 기록과 달라

대한의원서 日人의사가 시술… 53일만에 퇴원

한국 의료 역사상 처음으로 100년 전 흉부외과 기록이 발견됐다. 그 기록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을사오적 중 한 명으로, 이재명 의사의 칼에 찔린 이완용인 것으로 밝혀졌다.

김원곤(55)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흉부외과 변천사 자료를 찾던 중 1909년 12월 22일 경성 종현 천주교회당(지금의 명동성당) 앞에서 당시 내각총리대신이었던 이완용이 이 의사의 칼에 찔려 서울대병원 전신인 대한의원에서 진료 받았던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의 도움으로 1910년 1월 법원에 제출된 ‘상해 감정서’를 통해 이완용의 흉부외과 기록을 발견하게 됐다”고 17일 밝혔다.

김 교수는 이완용의 흉부외과 기록을 흉부외과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했다.

▽두 군데 자상 입어=김 교수가 발견한 감정서는 총 5장으로 한문과 일본어로 상세히 기술돼 있다.

감정서에 따르면 이 의사는 인력거에 타고 있던 당시 53세의 이완용을 향해 칼을 날렸지만 인력거꾼이 먼저 칼에 맞아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이완용은 칼을 피하기 위해 몸을 숙이는 과정에서 왼쪽 어깨와 오른쪽 등 아래 두 곳을 찔렸다.

지금까지 상당수 역사서는 이완용이 세 군데 이상 칼에 찔렸다고 저술해 왔으며 복부에도 찔렸다고 기록한 백과사전도 있다.

이완용의 상처는 경성지방재판소 검사 이토 도쿠준의 지시에 따라 대한의원 외과 의사였던 스즈키 고노스케가 창상의 위치와 깊이, 흉기의 종류, 창상의 경과, 예후 등을 기록했다.

이완용은 좌측 두 번째 갈비뼈 아래 부위 자상으로 갈비뼈 사이 동맥에 심한 출혈이 있었고 이로 인한 폐 손상 등으로 좌측 흉부타박상, 외상성 늑막염 등이 생겼다.

또 감정서에는 ‘폐를 손상해 창공으로부터 출혈 및 호흡에 수반된 공기 출입이 있었다’며 기흉(폐 주위로 공기가 들어온 것)과 혈흉(폐 주위로 피가 고인 것)을 의미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흉부 속에 고여 있는 혈액 등을 뽑아내는 ‘흉부천자술’에 의한 혈성 삼출액 배출이라는 외과적 시술에 관한 기록도 있다.

▽당시 최고의술 혜택=감정서 끝에는 ‘외상성 늑막염의 치료 여부가 완전 회복의 관건’으로 기술돼 있다. 당시 VIP 환자였던 이완용은 병원에서 최상급 치료를 받은 후 입원 53일 만인 1910년 2월 14일 완전히 회복해 퇴원했다.

김 교수는 “당시 의료기술 수준으로 봤을 때 이완용이 기흉과 같은 폐 손상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기흉은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응급질환으로 당시 의료술로는 회생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구한말 의료 기록은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는데 이완용은 당시 유명 인물이었기 때문에 자세한 기록이 가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 이재명 의사는

도산과 함께 독립운동… 의거 뒤 형장 이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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