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찰가 본계약때 깎기로 약속 ‘헐값 매입’
입찰방해 혐의 추가… 업무주도 농협상무 구속
‘헐값매각’ 의혹에 휩싸였던 농협 자회사 휴켐스의 매각 과정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 회장의 치밀한 사전 각본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밝혀졌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박용석)는 2006년 농협이 휴켐스를 태광실업에 정상가격보다 할인된 가격으로 매각한 이유에 대해 이같이 결론짓고 18일 휴켐스의 매각입찰 업무를 주도한 오세환 농협 상무를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 회장은 휴켐스 매각 결정이 나기 3개월여 전인 2005년 10월경에 이미 농협이 휴켐스를 매각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해 11, 12월에 정 전 회장을 만나 “휴켐스를 수의계약으로 인수하게 해 달라”고 협조를 요청했다. 2006년 2월 중순경에는 정 전 회장에게 20억 원을 건넸다. 정 전 회장은 2월 20일 오 상무에게 “태광실업이 휴켐스를 인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지시했다.
이후 농협 측에서는 오 상무가, 태광실업 측에서는 박 회장의 최측근인 정승영 정산개발 사장이 실무적인 논의를 이끌어갔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두 사람은 농협 규정상 수의계약이 불가능한 것을 알고 경쟁 입찰 과정 자체를 공모하게 된다.
경쟁 입찰에서 농협이 다른 업체의 입찰 가격 정보를 미리 알려주면 태광실업이 다른 업체보다 약간 높은 가격을 써내 낙찰받을 수 있도록 약속한 것. 낙찰가가 양측이 예상했던 것보다 올라가면 본계약 체결 과정에서 최대한 깎아주기로 했다. 당시 태광실업은 1200억 원에 인수하기를 희망했고, 농협 측은 1500억 원에 팔리기를 기대했다고 한다.
오 상무 등 농협 측 담당자들은 경쟁 입찰업체들에 예상 응찰 금액이 얼마인지 문의해 입찰 정보를 취합한 뒤 “1800억 원 이상을 써내야 우선협상자가 될 수 있다”는 정보를 태광실업 측에 슬쩍 알려줬다.
이 같은 각본에 따라 태광실업은 그해 5월 휴켐스의 46% 지분에 대해 1777억 원의 입찰가를 제출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그리고 인수가격을 낮춰주기로 했던 당초 약속대로 322억 원을 감액한 1455억 원에 최종계약을 했다.
검찰이 박 회장과 정 전 회장, 오 상무 등에게 입찰방해죄를 적용해 처벌하기로 함에 따라 태광실업으로서는 미래 성장동력으로 여겨왔던 휴켐스를 내놔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입찰방해 혐의가 법원에서 유죄로 판정이 나더라도 곧바로 휴켐스 인수계약이 무효가 되지는 않지만, 당시 휴켐스 인수에 나섰던 경쟁업체들이 검찰 수사결과를 근거로 해 ‘휴켐스 인수계약 무효 소송’을 낸다면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사정 때문에 구속 상태에서 검찰 조사를 계속 받고 있는 박 회장은 매우 당황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DNT, 질산, 초안 등 정밀화학 핵심소재를 생산하는 휴켐스는 지난해에 377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고 올해에는 3분기까지 영업이익이 468억 원으로 급신장하는 등 알짜회사로 꼽힌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