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 애환이 켜켜이…
한국 기독교 선교의 시발지
최초 사립 초등학교도 위치
6·25전쟁후 ‘양키시장’ 유명
추억의 헌책방 - 한복가게도
경인전철 동인천역에서 내려 도원역 방향으로 걷다보면 조그마한 상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구 금창동 ‘배다리’를 만나게 된다.
19세기 말까지 이곳에는 큰 갯골수로가 있어 만조 때면 바닷물이 들어왔는데 1900년 경인철도가 생긴 뒤 철로 주변을 개발할 때까지 배가 닿는 다리가 있어 ‘배다리’라고 불렸다. 지명이 붙은 것처럼 유서 깊은 이 거리는 근대 생활사의 풍부한 스토리가 넘쳐나는 곳이다.
○ 한국철도 최초 기공지
배다리는 근대교육의 요람으로 불린다.
한국 최초의 사립 초등학교인 영화초교는 미국 존스 선교사 부부가 1892년 4월에 세운 매일학교를 모태로 발전한 교육기관이다. 국내 최초 여성박사인 김활란을 비롯해 서은숙 김애마 김영의 등 한국 여성사에 이름을 빛낸 이들이 영화학교 출신이다.
1907년 인천 최초 공립 초등학교인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창영초교)도 배다리에서 문을 열었다. 인천 3·1운동의 시발지로 유명한 이 학교 교사 건물과 영화초교 본관은 인천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또 배다리는 한국 기독교 선교의 시발지로 통한다.
1897년 존스 선교사는 한국 서쪽지방(인천, 강화, 남양, 황해도 연안 등) 선교를 위해 이곳에 에즈베리 목사관을 건립했다. 남녀 선교사 기숙사까지 세워 기독교를 확산시키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배다리 인근 도원고개인 우각현(쇠뿔고개)에서는 한국 최초의 철도인 경인철도 기공식이 1897년 3월에 열려 ‘한국철도 최초 기공지’라는 기념비가 서 있다.
○ 특색음식 순대골목도
6·25전쟁이 끝난 이후인 1950년대 중반부터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군복과 통조림 담배 등을 싸게 팔아 속칭 ‘양키시장’으로 불렸던 자유시장은 인천지역 중년층에게 추억과 향수가 서려 있는 곳이다.
입을 옷이 넉넉하지 않았던 1970년대 초반까지 청년들 사이엔 이 시장에서 값싼 미군 군복을 구입해 검은색으로 물들여 입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었다.
이 시장에는 현재 점포 140곳이 운영되고 있지만 일부 가게만 서울의 남대문시장에서 구입해 온 외제 화장품과 커피 양주 등을 팔면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자유시장에 붙어 있는 순대골목은 인천의 특색음식거리로 지정됐을 정도로 유명하다. 6·25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시장 주변에 판잣집을 짓고 살며 생계를 잇기 위해 순대와 곱창 등을 팔기 시작했는데 현재 10여 곳의 순대집이 있다.
60여 곳의 전통 한복가게가 몰려 있는 한복거리는 인천이 고향인 50대 이상이라면 어머니 손에 이끌려 한 번쯤 다녀간 기억이 있는 곳이다.
1951년 1·4후퇴 당시 황해도 등지에서 피란 내려온 실향민 가운데 바느질 솜씨가 좋은 아낙네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 옷가지를 만들어 내다 파는 좌판을 벌인 데서 비롯됐다.
헌책방 거리도 배다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6·25전쟁 이후 폐허가 된 배다리에 리어카 책방이 모이면서 형성된 헌책방 거리는 한때 ‘작은 청계천’으로 불렸다. 한창때 50여 곳에 달하던 헌책방은 대형 서점에 밀리면서 현재 6곳만 남아 있다.
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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