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사 사장 교통사고 참변
“선물 기다리는 딸 어쩌라고”
불황 때문에 인건비를 아끼려 직접 배달에 나섰던 택배업체 사장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서울 노량진의 한 도로변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장모(55) 씨는 뒤에 오던 승합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졌다. 크리스마스 이틀 전인 23일 오후 3시의 일이다.
“남들보다 빨리”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온 온 장 씨는 고생 끝에 찾아온 낙을 누리기도 전에 서둘러 생을 마감했다. 그는 미국에서 페인트공으로 일하다 생계가 어려워 8년 전 귀국한 뒤 퀵서비스 배달원으로 시작해 3년 만에 택배업체를 차렸다. 남들이 하나 배달하고 쉴 때 매일 13시간씩 쉬지 않고 일해 이뤄낸 성취였다.
배달원들을 고용해 사업을 꾸려가는 건 쉽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일을 그만두는 게 다반사였고 배달 사고가 나지 않도록 책임감을 갖고 일하는 직원도 드물었다. 5년을 고군분투하다 올해 들어 사업이 안정을 찾았다.
그제야 장 씨는 작은 욕심을 부렸다. 한순간도 ‘여유’를 선물하지 못했던 가족과 배달용 승합차 대신 중고 승용차를 사서 오붓하게 겨울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틈날 때마다 인터넷 중고차 사이트에 들어가 차를 고르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나 최근 닥쳐 온 불황은 장 씨를 다급하게 만들었다. 주문량이 크게 떨어지면서 월수입이 반으로 줄었다. 중고차라도 사려면 사장이지만 직접 배달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렇게 한 달, 23일 장 씨는 직원이 두고 간 물건을 대신 배달하다가 변을 당했다.
24일 장례식장에서 만난 장 씨의 누나는 “동생이 8대 독자에 유복자인데 이게 웬 날벼락이냐”며 “어려운 때일수록 착실히 일하면 살아날 구멍이 있다며 아등바등 살았다”고 말했다.
장 씨는 초등학생 딸과 한 크리스마스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다. 마흔셋에 얻은 늦둥이 외동딸은 ‘휘슬’이란 악기를 갖고 싶어 했다. 그는 딸과 함께 서울 낙원상가에 가서 휘슬을 사주고 청계광장에 들러 화려한 불빛의 ‘디지털 캔버스’도 구경할 계획이었다.
부인 박모(54·여) 씨는 어린 딸이 충격을 받을까 봐 사고 소식을 알려주지 못하고 있다. 박 씨는 “밤늦게까지 물건을 배달하고 들어오는 아빠를 기다렸다가 하루 일과를 재잘재잘 다 이야기하고 나서야 잠이 들던 아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편을 대신해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딸에게 휘슬을 사주고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디지털 캔버스’도 보여 줄 계획이다. 그러고 나서 남편이 잠들어 있는 장례식장에 데리고 올 생각이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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