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도 심야택시잡기 경쟁

  • 입력 2008년 12월 26일 20시 23분


"행당동! 행당동!"

24일 오전 1시 반 서울 종로 보신각 앞. 송년회를 마치고 귀가하려던 은행원 홍은석(34) 씨는 50분이 넘도록 택시를 못 잡고 언 발을 동동 굴렀다.

'빈차'라는 붉은 표시를 보고 도로까지 나와 손을 흔들어도 태반이 그냥 지나갔다. 겨우 택시를 세워 차창 틈으로 행선지를 밝히면 기사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택시로 20분 거리인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 사는 홍 씨는 "택시운전사들은 손님이 없어 힘들다는데 정작 손님은 택시를 못 잡아 난리니,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연말 송년모임이 많아지면서 서울 광화문 일대와 여의도, 강남역 등 직장인 밀집지역은 밤마다 택시 잡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불황으로 낮에 손님이 없어 '적자 운행'을 하는 택시운전사들이 손해를 메우기 위해 밤 근무 때 장거리 운행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1만 원 이하의 '단거리' 승객들은 택시를 잡기 위해 미터기 요금의 두세 배를 내거나 택시운전사의 2중, 3중 합승 요구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해야 한다.

경기침체로 강남에 위치한 기업들이 2차부터는 저렴한 강북지역으로 넘어와 송년회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야간 '택시 가뭄'은 강북에서 더 심하다.

이에 대해 택시운전사들은 사납금을 채우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전국택시노조에 따르면 서울시내의 택시 수는 10년 사이 10%가량 늘었지만 승객 수는 오히려 20% 줄었다.

여기에 불황이 겹쳐 손님은 더 줄어드는데 액화석유가스(LPG) 값이 1.5배 올라 하루 10만 원 내외의 사납금마저 채우기 어려운 형편이다. 택시운전사들은 80만 원가량의 기본급에 사납금을 내고 남은 돈을 성과급으로 받는데 사납금을 채우지 못하면 자기 돈으로 대신 메워야 한다.

기사들은 보통 한 달의 절반은 낮 12시간, 절반은 밤 12시간을 근무한다. '낮조'로 일할 때는 손님이 없어 자기 돈을 보태며 운행하기 때문에 밤에 일하는 동안 바짝 벌어야 '낮조' 때 생긴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

15년차 택시운전사 김상필(51) 씨는 "낮조는 하루 1~2만 원 적자이고 밤조로 뛰면 장거리, 합승을 해야 4~5만 원이라도 벌 수 있다"며 "한 달에 26일을 일하면 보통 110~130만 원을 버는데 노른자 시간인 밤 12시~오전 2시 어중간한 곳에 가는 손님을 내려주고 빈차로 돌아오면 한 달에 80만 원도 벌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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