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주식회사” 상황따라 말 바꾸기
매일 개정안 반대 보도 내보내며 총력 태세
파업 동참 SBS-CBS ‘민영 미디어렙’ 관련 복잡한 속내
MBC, SBS 등 지상파 노조들은 26일 파업의 명분으로 신문 방송 겸영 허용과 방송광고제도의 경쟁체제 도입을 포함한 7개 미디어 관계법 개정안의 저지를 내세우고 있다. 이들은 개정안이 특정 신문과 대기업에 방송을 넘겨주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방송 산업에 대한 신규 사업자의 진출을 원천 봉쇄해 장기간 누려 온 지상파 독과점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자사 이기주의의 발로라는 게 방송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미디어 관계법 개정안에 대해 지상파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언론노조가 주도하는 연대 파업의 동력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미지수다.
▽MBC는 곧장 ‘전면 파업’에 돌입=MBC 노조는 7개 개정안에 대해 ‘공영방송’ MBC를 무력화해 대기업과 보수신문에 방송을 넘겨주려는 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MBC는 19일부터 ‘뉴스데스크’ 등을 통해 개정안에 일방적으로 반대하는 보도를 2, 3꼭지씩 거의 매일 내보내며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MBC 노조는 이번 개정안이 ‘MBC 민영화를 통한 정권의 방송 장악’이라며 비판하고 있으나 MBC 민영화는 김대중 정권 시절인 1999년 방송개혁위원회에서도 구체적인 안이 제시된 바 있다.
그럼에도 MBC는 공영과 민영방송이 뚜렷하게 분리되지 않는 현 방송 구조에서 민영화가 거론되면 ‘공영방송’이라고 주장하고, 시청자나 국회의 감시 문제가 제기되면 ‘상법상 주식회사’라는 이중 논리를 내세워왔다.
MBC 노조가 다른 방송사와 달리 곧장 ‘전면파업’에 들어간 것도 시청자를 볼모로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뜻이다. 엄기영 MBC 사장은 담화문에서 “방송법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방송의 상업화와 여론의 독과점 현상 등 부정적인 여파가 밀려올 것이며 공영방송 MBC의 위상을 지켜야 한다는 데 노와 사가 따로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도 “노조의 파업 자제와 함께 정치권의 강행 처리가 아닌 사회적 합의 절차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MBC의 한 간부는 “파업 참여율은 높지만 명분이 애매하다는 인식도 있다”며 “(미디어 관계법 개정안에 대해) 가만히 있을 순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참가한다는 분위기도 있다”고 말했다.
▽SBS는 전면파업에 들어가지 않아=SBS는 창사 이래 첫 파업을 벌이면서 개정안에 대해 일단 MBC와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으나 미묘한 입장 차를 보이고 있다. SBS 노조는 MBC와 달리 전면파업에 들어가지 않고 프로그램 차질이 없는 선에서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SBS는 개정안에 따라 종합 편성 채널 등이 신설되면 경쟁이 치열해져 광고시장에서 SBS의 몫이 줄어든다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방송광고제도에 대한 규제 완화로 민영광고판매대행사(미디어렙)가 신설되면 SBS가 가장 큰 혜택을 보기 때문에 이번 파업에 부정적인 의견을 지닌 이도 많다.
SBS 사측은 이날 ‘파업에 대한 회사 입장’을 내고 “대다수 조합원이 미디어 관계법 개정안에 반대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개정안은 정부와 국회의 고유 권한으로 언론 노조가 법개정을 이유로 파업을 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고 불법 파업이나 집회에 가담하는 사원은 민영방송의 정체성을 거부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밝혔다.
종교방송인 CBS는 민영 미디어렙이 신설될 경우 당장 광고 수주 감소로 타격을 가장 많이 본다는 점 등에서 개정안을 반대하고 있다.
▽KBS 노조는 어떻게 되나=KBS 노조는 언론노조에서 탈퇴했기 때문에 이번 파업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노조는 정연주 전 사장을 지지하는 이들로 구성된 사내 단체인 ‘사원행동’과 대응을 논의하고 있으나 파업에 참여할 일정은 아직 없다. KBS 관계자는 “미디어 관계법이 개정돼도 KBS는 큰 영향이 없기 때문에 파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노조도 내부 주장이 엇갈려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