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탁구공 색깔 하나에 울고 웃어야 하나…

  • 입력 2008년 12월 27일 02시 59분


당첨자들의 환호 서울지역 국제중학교 입학 추첨이 열린 26일 서울 대원중학교에서 합격이 확정된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올리고 있다. 김미옥 기자
당첨자들의 환호 서울지역 국제중학교 입학 추첨이 열린 26일 서울 대원중학교에서 합격이 확정된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올리고 있다. 김미옥 기자
국제中 추첨 탈락 학생 “너무 억울해” 끝내 눈물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26일 오전 11시. 서울 광진구 중곡동 대원외고 대강당에 초등학교 6학년 학생 317명이 부모의 손을 잡은 채 연단을 주시하고 있었다. 잠시 후 한 명씩 차례로 연단에 올라간 아이들은 하얀색 상자에서 탁구공 하나씩을 꺼냈다.

고사리 같은 손에 흰색이나 귤색 또는 녹색 공을 한 개씩 쥔 아이들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돼 있었다. 한 아이는 “면접 때는 하나도 안 떨렸는데 지금은 가슴이 너무 쿵쾅거려요”라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모든 아이가 공을 뽑은 뒤 마지막으로 대원중 김일형 교장이 연단에 올라갔다.

김 교장은 “내가 여러분이 들고 있지 않은 색깔을 고른다고 원망하지 않을 거죠?”라며 몇 번이나 되물었다. 마침내 김 교장이 상자에 손을 넣어 합격자를 결정할 공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의 손에 들린 공은 귤색이었다.

귤색 공을 쥔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렸다. 동시에 흰색과 녹색 공을 쥔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서는 긴 탄식이 터져 나왔다. “흰색과 녹색 공을 선택한 친구들은 이제 나가주세요”라는 김 교장의 말에 흰색과 녹색 공을 쥔 학생들은 고개를 떨어뜨린 채 힘없이 강당을 빠져나갔다.

끝내 울음을 터뜨린 아이들도 있었다. 한 아버지는 우는 자녀에게 “그냥 이번엔 줄을 잘못 선 것뿐이야. 인생이 원래 그래”라며 등을 토닥였지만 아이는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했다.

녹색 공을 쥐고 있던 한 학생은 “공이 손에서 떨어지면 추첨에서 떨어질 것 같아서, 일부러 꼭 쥐고 있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또 다른 학생은 “친구하고 똑같은 색깔을 뽑아서 같이 학교에 다니자고 약속하고 올라갔어요. 색깔이 다를 때부터 불안했어요”라며 “추첨으로 당락이 갈리는 건 너무 억울해요”라고 말했다.

내년부터 국제중으로 전환하는 대원중 3차 전형 공개추첨은 이렇게 1시간 반 만에 끝났다. 추첨 전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서약서를 써냈지만 탈락한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아쉬움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탈락한 한 아이의 아버지는 학교를 빠져나오자마자 담배 한 대를 피워 물고 ‘나는 남을 편하게 하는 사람인가’라는 글이 적힌 교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진보 운동단체들이 국제중을 ‘귀족학교’로 몰아세우고 평등성만 요구하니까 학교도 어쩔 수 없이 추첨제를 택한 것이다. 이래서야 다양한 특성화 학교가 나오겠느냐.”

같은 시간 학교 앞에서는 한 사교육업체가 탈락한 아이들에게 중국 Z국제중 입학 안내 책자를 나눠주고 있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 동아일보 김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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