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당동! 행당동!”
24일 오전 1시 반 서울 종로 보신각 앞. 송년회를 마치고 귀가하려던 은행원 홍은석(34) 씨는 50분이 넘도록 택시를 못 잡고 언 발을 동동 굴렀다.
‘빈차’라는 붉은 표시를 보고 도로까지 나가 손을 흔들어도 태반이 그냥 지나갔다. 겨우 택시를 세워 차창 틈으로 행선지를 밝히면 운전사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택시로 20분 거리인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 사는 홍 씨는 “택시운전사들은 손님이 없어 힘들다는데 정작 손님은 택시를 못 잡아 난리니,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연말 송년모임이 많아지면서 서울 광화문 일대와 여의도, 강남역 등 직장인 밀집지역은 밤마다 택시 잡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불황으로 낮에 손님이 없어 ‘적자 운행’을 하는 택시운전사들이 손해를 메우기 위해 밤 근무 때 장거리 운행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강북서 택시잡기 더 어려워
1만 원 이하의 ‘단거리’ 승객들은 택시를 잡기 위해 미터기 요금의 두세 배를 내거나 택시운전사의 2중, 3중 합승 요구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해야 한다.
경기침체로 강남에 위치한 기업들이 2차부터는 비용이 덜 드는 강북지역으로 자리를 옮겨 송년회를 하는 사례가 늘어 야간 ‘택시 가뭄’은 강북에서 더 심하다.
이에 대해 택시운전사들은 사납금을 채우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전국택시노조에 따르면 서울시내의 택시 수는 10년 사이 10%가량 늘었지만 승객은 오히려 20% 줄었다.
여기에 불황이 겹쳐 손님은 더 줄어드는데 액화석유가스(LPG) 값이 1.5배 올라 하루 10만 원 내외의 사납금마저 채우기 어려운 형편이다. 택시운전사들은 80만 원가량의 기본급에 사납금을 내고 남은 돈을 성과급으로 받는데 사납금을 채우지 못하면 자기 돈으로 대신 메워야 한다.
운전사들은 보통 한 달의 절반은 낮 12시간, 절반은 밤 12시간을 근무한다. ‘낮조’로 일할 때는 손님이 없어 자기 돈을 보태며 운행하기 때문에 밤에 일하는 동안 바짝 벌어야 ‘낮조’ 때 생긴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
사납금 못 채우면 자기돈 채워
15년차 택시운전사 김상필(51) 씨는 “낮조는 하루 1만∼2만 원 적자이고 밤조로 뛰면 장거리운행이나 합승을 해야 4만∼5만 원이라도 벌 수 있다”며 “한 달에 26일을 일하면 보통 110만∼130만 원을 버는데 노른자 시간인 밤 12시∼오전 2시 어중간한 곳에 가는 손님을 내려주고 빈차로 돌아오면 한 달에 80만 원도 벌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