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두 번째 단계에 적용되는 기준 중에서 ‘공정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공정성은 객관성이라고 표현해도 됩니다.
내 주장을 정당화하는 것이 목적일지라도 사실을 왜곡하거나 사실의 어떤 한 측면만을 과장해서 접근한다면 공정성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내세웠을 땐 반론에 쉽게 무너지게 됩니다. 따라서 글쓴이는 자신의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도 수긍할 수 있을 만큼 탄탄한 논의를 펼쳐야 합니다.
공정성의 칼을 휘둘러야 할 때는 최소한 세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교묘한 말재주로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사실을 완전히 왜곡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은 제외하고 유리한 내용만 선택하는 경우입니다.
셋째는 추측이나 예측한 내용을 근거로 제시할 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몰아가는 경우입니다. 우선 앞의 두 경우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공정성에 따라 비판받아야 합니다. 아무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마치 모든 것이 증명된 것처럼 넘어가는 것이 왜곡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이란 표현은 상품 광고에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실제로는 얼마나 많이 연구하였는지, 얼마나 훌륭한 연구였는지, 누가 연구하였는지를 비롯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 주는 바가 전혀 없습니다.
주장에 대한 증거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증거가 있다는 것을 암시만 함으로써 그 주장에 관한 증거가 있는 듯 왜곡하고 있습니다. 공정성에 위배되는 주장입니다.
특히 통계를 내기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할 때 자신이 의도한 결론으로 끌어가기 위해 문제를 왜곡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역시 공정성의 예리한 칼로 비판해야 합니다. 가상의 예를 들어 봅시다.
“설문에 응한 100명의 치과 의사 가운데 80명은 환자가 껌을 씹기 원할 때 무설탕 껌을 추천합니다.” 이 주장에는 두 군데 왜곡의 위험이 있습니다.
우선 ‘설문에 응한’이란 표현은 설문에 답한 치과 의사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습니다. 무설탕 껌에 우호적인 치과 의사만을 대상으로 설문했다면 위의 주장은 성립할 수 있지만 무작위로 설문을 실시했을 때 같은 결론이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치과 의사도 있다’는 의견이 제기될 경우에도 ‘단지 설문에 응한 치과 의사들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일 뿐 치과 의사 전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식으로 반론을 피해갈 수 있습니다.
‘환자들이 껌을 씹기 원할 때’라는 표현에도 왜곡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표현을 엄밀히 따져보면 치과 의사들이 ‘무설탕 껌을 씹는 것은 껌을 씹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치아에 좋다’고 추천하는 게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치과 의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설문이 제시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만일 당신의 환자들이 껌을 씹기 원하면 설탕이 들어 있는 껌을 권하겠습니까, 아니면 무설탕 껌을 권하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물어 본다면 치과 의사들은 대부분 무설탕 껌 쪽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무설탕 껌을 권장하는 것으로는 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위의 주장은 실제 설문결과에서는 무설탕 껌을 권장할 만한 근거가 없음에도 사실을 왜곡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실에 일부는 기초하고 있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부각할 경우도 공정하지 못한 논의가 됩니다. 정치 현안이 등장할 때 마다 경쟁하는 정파들은 서로 여론조사 결과나 관련 자료를 들고 나옵니다.
이전보다 성장을 했지만 성장률이 다른 나라보다 높지 않을 경우, 두 측면을 다 보여줘야 공정합니다. 하지만 이 상황을 비판하고자 하는 정치인은 절대적인 성장 자체는 무시하고 성장률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서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하려고 합니다.
반대로 찬성 쪽은 성장 결과만을 강조합니다. 다른 나라와의 성장률 비교는 의식적으로 배제하려고 합니다. 조작된 자료가 아니라 실제 자료를 가지고 논의하더라도 자기에게 유리한 자료만 선택해 주장할 경우 공정성의 기준에 따라 비판해야 합니다.
극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의사들의 98%는 ‘안식처’라는 이름의 진정제를 1년 이상 장기 복용하면 실어증에 걸릴 수 있다고 믿고 있고, 나머지 2%는 이렇게 믿지 않는다고 합시다.
만일 “어떤 의사들은 ‘안식처’라는 이름의 진정제와 실어증이 관계 있다고 확신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면 분명 내막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주장이지만 거짓 주장을 했다는 비판은 모면할 수 있습니다.
‘어떤’이라는 낱말이 이 주장의 요점을 애매하게 만든 것입니다. 다수 전문가의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히지 않은 채 자기에게 유리한 소수 전문가의 의견만을 근거로 제시하면 역시 공정성의 칼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 자체를 왜곡하는 것은 아니지만 표현을 바꾸어 사실에 대한 왜곡된 인상을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국의 지도자에 대한 암살 기도를 ‘그를 무력화하기 위한 시도’라고 표현하면 사태에 대해 인상을 약하게 만들어 강한 반대 의견을 피할 수도 있습니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 의사소통교육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