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이 살면 사람들도 북적대겠죠” 기대 부풀어

  • 입력 2008년 12월 29일 02시 58분


■ 착공식 앞둔 안동-나주 르포

낙동강 둔치 안동시민들 “일 생긴다니 좋아”

나주선 “70년대 영산포 호황 다시 왔으면”

일부 주민 “대운하 논란 잘몰라… 뭐든 해야”

《29일 4대 강 살리기 사업이 처음 시작되는 낙동강 유역 경북 안동시와 영산강 일대 전남 나주시 인근 주민들은 이 사업으로 일자리가 늘어 지역경제가 살아나기를 기대했다. 이번 공사가 불황을 한꺼번에 몰아내진 못해도 침체탈출의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착공식을 앞둔 안동시, 나주시와 내년 상반기 공사를 시작하는 충북 충주시(한강 유역), 충남 연기군(금강 유역)의 현지 분위기를 소개한다.》

#1 “탕, 탕, 탕….” 27일 오후 경북 안동시 법흥동 영가대교와 영호대교 사이 낙동강 둔치. 29일 열리는 ‘4대 강 살리기 사업’ 착공식 행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50여 명의 근로자가 크레인으로 무대 양쪽에 음향장비를 쌓아올린 뒤 흰 천막 20여 개를 쳤다. 구경하던 한 주민은 “먹고살 게 없었는데 뭐든 한다니 다행”이라고 했다.

#2 비슷한 시간 전남 나주시 삼영동 영산대교 인근 영산강 둔치에선 주민 10여 명이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나주 토박이’라는 한 남성은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는 사업이라니 청소라도 해서 축하하고픈 심정”이라면서도 “이번 공사로 정말 지역경기가 살아나긴 하느냐”고 물었다.○“사람으로 북적댔으면…”

낙동강 정비공사가 시작되는 현장뿐 아니라 안동 시내 곳곳에는 ‘경축, 안동지구 생태하천 조성사업 착공식’ ‘환영, 물길정비 첫 삽은 안동에서’ 등의 글귀를 쓴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날 낙동강 둔치에서 운동하던 시민들은 행사장 곳곳을 유심히 살폈다. 황병우(68) 씨는 “강 주변을 정비해서 깨끗하게 만든다고 들었다. 물이 많아지면 새떼도 더 많이 온다고 하더라”며 반겼다. 손모(62) 씨도 “안동은 시내라도 식당만 잔뜩 있을 뿐이다. 대운하 논란 같은 정치문제는 잘 모르지만 뭐라도 해서 유동인구가 늘면 좋겠다. 지금은 무조건 살고 봐야 할 때”라고 했다.

나주 영산강 유역 주민의 기대감은 좀 더 절절했다. 영산강에 배가 드나들던 1970년대의 호황을 추억하는 세대가 많아서다.

20년째 나주시에서 택시를 몰고 있는 김기헌(73) 씨는 “젊은 시절 영산포는 정말 대단했다. 그때로 돌아가진 못해도 나주가 사람으로 북적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사 소식을 듣고 광주에서 달려왔다는 한 중장비 기사는 “모처럼 일감을 찾았다. 제발 오래오래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공사 일꾼 맞을 준비 속에 회의론도

영산강 주변 일부 식당 주인은 메뉴를 바꾸거나 식당 내부를 새로 단장하려는 궁리를 하고 있다. 영산대교 인근에서 7년째 홍어집을 하는 안국현 씨는 “이 지역에서 홍어를 파는 집이 30여 곳이나 돼서 경쟁이 치열하다”며 “손님이 늘어날 것에 대비를 해야겠다”고 말했다.

공사를 맡은 사람들은 현실적인 걱정을 많이 했다. 영산강 정비를 맡은 건설사 관계자는 “지역 사람들은 대체로 나이가 많은 편이어서 젊은 일꾼을 고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옆에서 이 말을 듣던 인근 주민은 “그럼 외지인이 일하러 많이 와서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할 테니 더 좋겠다. 무슨 걱정이냐”고 했다.

일각에선 공공 공사를 한다고 해도 당장 주민들이 혜택을 보긴 힘들 것이라는 회의론을 펴기도 했다.

낙동강 공사 현장을 찾은 오모(55) 씨는 “정부에서는 지방 사람을 고용하라고 하지만, 밑에서 이를 잘 지킬지 모르겠다”며 “건설사만 좋아지고 서민에겐 혜택이 안 돌아가면 소용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 대운하 논란 경계하는 공무원들

영산대교에서 약간 떨어진 영산강변으로 내려가 물에 손을 담그면 썩은 수초들이 두 손 가득 잡힌다. 그만큼 강에 물이 적다는 뜻. 강 중간 중간에 퇴적물이 쌓여 물의 흐름을 방해할 정도다. 하지만 이번 영산강과 낙동강 일대 공사에는 이런 퇴적물을 걷어내는 강길 정비공사가 없다. 홍수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고 수변 공원을 조성하는 게 전부다. ‘하천 정비사업이 대운하와 연계된 것 아니냐’는 논란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공사 발주처인 현지의 지방국토관리청은 대운하 논란을 여전히 경계하고 있다. 부산지방국토관리청 진춘근 주무관은 “안동 생태하천 조성사업은 보를 높이는 것 외에는 강에 손을 대지 않고 강 주변을 공원처럼 만드는 사업”이라며 대운하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안동=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나주=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지역발전 앞당기는 전기 마련됐다”

연기 지자체 “경제 활성화”-주민 “행정도시 축소되나”

충주 주민-지자체 모두 “개발 더뎠는데 확 달라질 것”

■ 내년 상반기 착공예정 연기-충주 표정

4대 강 살리기 사업의 금강지구 첫 사업지는 충남 연기군 남면 양화 송담리, 서면 월하리, 동면 합강리와 금남면 대평리 일대다. 미호천과 대청댐에서 금강으로 흘러드는 물이 만나는 곳이다.

정부는 행정중심복합도시(행정도시) 주변으로 흐르는 금강 본류(13km)와 미호천 지류 등 총 17.4km에 대한 정비 마스터플랜을 내년 5월까지 세운 뒤 6월부터 1789억 원을 들여 사업을 시작한다.

충남도는 이곳을 포함해 공주 부여 논산 서천으로 흐르는 금강 322km의 정비사업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완구 충남지사는 “금강 정비사업은 홍수 피해 예방과 자연생태계 보호 등 이수(利水) 및 치수(治水) 사업이 대부분을 차지해 대운하와는 관계없다”며 “이참에 예산을 충분히 끌어와 체계적으로 금강 치수사업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충남도 치수방재과 박승태 계장은 “금강 정비사업은 공주 부여 논산 서천 등 상대적으로 낙후한 충남 서남부 지역의 성장동력으로 작용해 천안과 아산 서산 당진 등 충남 서북부 지역에 편중된 지역 발전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공주와 부여의 경우 금강 정비사업이 2010년 대백제전(백제문화제)의 개최와 맞물려 지역 발전을 앞당기는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첫 사업지인 연기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탐탁지 않다는 반응도 있다. 행정도시사수연기군대책위 홍석하 사무국장은 “정부가 돈이 들지 않는 세종시설치법과 정부이전기관 변경 고시 등을 하지 않으면서 4대 강 살리기 사업을 들고 나와 행정도시가 축소되거나 지연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주민들 사이에 적지 않다”고 전했다.

4대 강 살리기 사업의 한강 선도사업지구인 충북 충주시는 이번 사업을 지역 발전의 큰 호재로 여기고 있다.

남한강 하류지인 충주시 가금면 충주조정지댐(탄금호) 부근에서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 정비사업이 시작될 예정인데, 벌써부터 지역 건설경기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분위기다.

임혜정(30·여·충주시 칠금동) 씨는 “충북의 북부권인 충주는 인근 제천 단양과 함께 도내에서 상대적으로 개발이 더딘 곳이었는데 이번 정비사업이 마무리되면 확 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반겼다.

충주시가 금릉동 일대 12만4000m²에 2012년까지 조성할 예정인 유엔평화공원 사업도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우건도 충주시 부시장은 “민자 유치로 추진하는 이 사업에 하천 생태계 복원이나 노후 제방 보강 등 예산 부담이 되는 각종 토목 조경 공사가 많은데 한강 정비사업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고 말했다.

충주시는 4개국이 경쟁 중인 2013년 세계조정선수권대회 유치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역 내 부동산 업소들도 반색하고 있다. J부동산 중개소 관계자는 “정부의 대운하 포기 선언으로 땅값이 폭락하고 거래가 끊겼는데 이번 한강 정비사업 발표 뒤 매매 문의전화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연기=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충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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