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인 같다” 조사해보니 파키스탄인… 엉뚱한 피해
학교측 “불상사 우려 외국인 혼자서는 다니지 말라”
“셔틀버스를 탈 때마다 제게 쏠리는 의심의 눈길이 싫어서 일부러 강의실까지 먼 길을 걸어서 등교하곤 했습니다.”
서울대 인도유학생회 사티안슈 스리마스타바(24·인문대 석사과정) 회장은 최근 서울대에서 벌어진 외국인 유학생 성추행 사건으로 마음고생을 겪어야 했다.
지난달 24일 한 서울대 여학생이 학내 인터넷 게시판인 ‘스누 라이프(SNU Life)’에 올린 ‘셔틀버스에서 인도 사람인 듯한 외국인 남학생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글이 발단이 됐다.
이달 1일에도 ‘학교 셔틀버스에서 외국인 남학생이 여학생을 성추행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 휴대전화로 가해자의 얼굴을 찍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러자 해당 게시판에는 ‘인도인들은 동양인을 우습게 본다’, ‘저런 것들은 추방해야 한다’는 등 인도인에 대한 원색적인 욕설과 비난성 글들이 줄을 이었다.
이를 계기로 서울대에서 제노포비아(xenophobia·외국인 혐오증) 논란이 일고 있다. 학교 측은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가해질 불미스러운 일에 대비해 인도유학생회에 “혼자서 캠퍼스를 돌아다니지 말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대 성희롱·성폭력상담소의 진상조사 결과 성추행 범인은 파키스탄 출신의 대학원생인 A(28) 씨인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대가 외국인 유학생을 성추행 가해자로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 씨는 그동안 5명의 서울대 여학생을 상습 성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고국의 문화와 한국의 문화 차이를 잊고 순간적으로 실수를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번 사건과 관계가 없는 인도 유학생들이 애꿎은 오해로 곤욕을 치른 셈이다.
학생처 관계자는 “인도유학생회가 이번 사건으로 큰 모욕감을 느꼈다”면서 “범행이 일어난 당일 인도 유학생 40여 명 전원의 행적을 일일이 조사해 학교 측에 통보해 왔다”고 전했다.
인도 유학생 로히다스 아로테(31·농업생명과학대 박사과정) 씨는 학내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인도 학생들이 매우 불쾌해하고 있다”며 “조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인도 사람인 듯하다’는 표현만으로 인도인을 비난한 건 너무 성급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당신들도 해외에선 중국인이나 일본인과 비슷한 외모로 받아들여지는데 이런 억울한 일을 겪으면 어떤 기분이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일부 서울대생들도 반성의 뜻을 보였다. ID ‘코뿔소’는 “섣부른 추정만으로 엄한 사람을 당황케 하진 말자”고 했고, ID ‘수달’은 “다른 유학생들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글을 올렸다.
서울대는 첫 외국인 유학생의 성추행 사건을 맞아 재발 방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서울대 장재성 학생처장은 “다음 달 최종 조사 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라 적절한 징계수위를 결정할 것”이라며 “이를 계기로 내년부터 서울대의 외국인 유학생들이 의무적으로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내국인의 경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고 있지만 외국인 유학생은 그렇지 않다.
서울대는 “내국인 학생을 멘터로 지정해 초기 정착 과정의 외국인 학생들과 연결해 주거나, 내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다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교육과정과 동호회를 장려하는 등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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