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스스로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도록 적당히 휴식시간을 줄 필요가 있어요. 큰아이는 시험 기간에도 매일 30분씩 전자 기타를 연주했어요. 걱정이 앞섰지만 성적은 오히려 올랐더군요.”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6학년생 자녀를 둔 김수경(39) 씨의 말에 초등학교 3, 4학년생 남매를 키우는 김미경(38) 씨가 맞장구를 쳤다.
“제 아이들도 피아노, 바이올린을 배운 뒤부터 영어로 말할 때 표현이 훨씬 풍부해졌어요. 악기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나니 자신감과 발표력이 부쩍 늘었어요.”
경기 부천시의 한 어학원에서 초중학생 자녀를 둔 ‘고수 엄마’들이 번개모임을 가졌다. 비슷한 교육관을 가진 엄마끼리 별도 모임을 만들어 ‘알짜 정보 품앗이’를 하고 있다. 이들은 한두 달에 한 번씩 정기모임을 열고 산지식을 공유한다.
서로 자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나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추천해주거나 방학 과제를 효과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기도 한다. 학습효과에 비해 시간이 많이 드는 학원 과제물이나 비효율적인 학교 교육시스템 등에 대해선 공동으로 개선책을 요구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4학년생 아들을 둔 임모(37) 씨는 “이 모임에서 아이가 영어 슬럼프에 빠졌을 때, 또래보다 빨리 사춘기가 찾아왔을 때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을 ‘선배 엄마’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자녀를 직접 키우며 경험으로 체득한 노하우여서 교육 관련 서적에 나와 있는 보편적인 주장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초등학교 5학년생 아들을 둔 담옥주(42) 씨는 “아들이 경험을 쌓고 자신감을 기를 수 있도록 올 한 해 동안 53개의 체험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했다”며 “사교육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자녀교육에 성공한 엄마들의 조언이 없었다면 여전히 ‘학원 숲’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마들 사이에서 가장 큰 이슈는 ‘국제중’이었다. 김미경 씨는 “국제중 입학을 둘러싸고 벌써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서울 영훈초등학생의 90% 이상이, 일반 초등학교 학생의 3분의 1 이상이 국제중에 지원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엄마들이 자녀에게 경시대회 준비나 공인영어시험 성적을 위한 공부를 시키고 있다고 귀띔했다.
초등학교 2학년생 자녀를 둔 이유화(43) 씨는 “아이가 원한다면 지원은 해주겠지만 너무 일찍 입시 열풍에 휩싸이게 하는 건 아닌지 염려된다”고 말했다. 입시 실패라는 경험은 어린 나이에 감당하지 못할 큰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아이들이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안타깝다”고 입을 모았다.
사교육 경험 없이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영재교육 대상자로 선발된 아들 때문에 걱정이 더 많아졌다는 임수진(40) 씨. 그녀는 “원석 같은 영재들을 오히려 둔재로 만드는 획일화된 교육 시스템 때문에 앞날이 깜깜하다”고 말했다.
김미경 씨는 온 가족이 호주로 이민을 갈 계획이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아들이 전문선수가 되겠다고 했을 때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지 못하고 스포츠와 관련된 다른 전문직을 권유했던 ‘사건’이 계기가 됐다. 그녀는 “한국에선 운동 시작이 학업 포기와 같은 의미가 아니냐”며 “아이들이 꿈을 위해 감수해야 할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김수경 씨는 “승마, 사진촬영, 악기 등 다양한 방과 후 활동을 통해 배움을 즐기며 공부하는 해외 아이와 비교했을 때 한국 아이를 보면 엄마로서 가슴이 아프다”면서도 “내신 성적과 특목고 입시를 위해 아이들을 다그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보니 부모의 스트레스도 아이들 못지않다”고 말했다.
치솟는 사교육비에 대한 하소연부터 국제중, 특목고, 대학입시에 이르기까지 엄마들의 수다는 오래도록 이어졌다.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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