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꼼꼼하게 읽어보아도, 거리에 떠도는 소문에 귀를 기울여 보아도 한결같이 어둡고 을씨년스러운 한 해를 예고하는 말이 들려올 뿐입니다. 우리의 머릿속은 그래서 좌절 곤경 추락 침몰 고통 시련과 같은 파국이 연상되는 이미지를 가진 단어로 채워집니다. 꿈을 잃지 말자, 불굴의 정신으로 이 난관을 극복하자는 말들이 여러 곳에서 들려옵니다만, 가슴속에서는 헛되고 씁쓸한 슬픔만 묻어납니다. 밝은 미래를 점쳐보는 일은 석기시대의 유물에서 안경이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듯이 어리석어 보이기도 합니다.
시련이 닥칠수록 강해졌던 우리
내 일생을 바쳐 세운 것이 무너지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낡은 연장을 집어 들고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낮고 느린 슬픔의 무게 때문에 마냥 아래로만 가라앉는 심정을 달래기 힘들어집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추락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던 실의의 역사가 우리에겐 없었습니다. 벼랑으로 내몰렸을 때, 역사의 역주행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 우리는 언제나 두 눈을 부릅뜨고 그 위협과 정면으로 맞서왔습니다. 전쟁의 와중에 휩쓸려 변방으로 떠밀린 삶을 살았을 때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았던 적이 없습니다. 어떠한 시련이 닥치더라도 도도한 삶의 궤적으로 복원시켰던 자긍심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는 예기치 못했던 좌절과 마주쳐야 했을 때, 혹은 가난의 골짜기를 헤어나지 못해 암담하기 그지없었을 때 어머니와 마주 앉아 울면서 먹었던 어린 시절의 저녁밥을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 시절에 겪었던 곤경만큼 혹독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시련은 오히려 저를 비겁하게 만들지 않았으며, 담대한 기백을 갖추고 살도록 다독거려 주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한 자연환경을 가진 남극은 사계절을 통틀어 칼바람이 그치지 않는 동토입니다. 이곳에서 사는 펭귄의 암컷은 하필이면 영하 70도까지 떨어지는 혹한 속에서 한 개의 알을 낳고 바다로 떠나버립니다. 겨울철에 알을 낳는 것은 새끼가 아비의 품을 떠나는 시기를 먹이 구하기가 손쉬운 여름에 맞추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짐승도 종족보존 위해 극한사투
알을 부화시키기까지 수컷이 겪는 폭압적인 고통은 눈물겹습니다. 알을 품어 부화시키는 동안 수컷 펭귄은 한결같이 알을 발등 위에 올려서 떨어뜨리지 않으려 합니다. 먹지도 못하고 물조차 마실 수 없는 상태에서 시속 150km 이상으로 몰아치는 치명적인 눈보라와 폭풍에 정면으로 부딪치지만 놀라우리만큼 꿋꿋하게 견뎌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태양조차 뜨지 않는 어둠 속에서 호시탐탐 생명을 노리는 바다표범과 굶주린 갈매기의 공격도 따돌려야 하는 삼중고를 겪습니다.
알을 품는 동안 수컷의 몸무게는 반으로 줄어들지만 새끼에게 먹이를 줄 상황이 끝났다 싶으면 나머지를 토해버릴지언정 자신이 먹지는 않습니다. 그처럼 혹독한 담금질이 새끼 펭귄을 더욱 강인한 동물로 거듭나게 한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습니다. 알을 부화시켜 키워내기 위해 두 달 동안 겪는 수컷의 고난극복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듭니다. 그런 부정(父情)의 힘은 인간인 우리조차 흉내 내기 어려울 것입니다.
세계의 여러 곳을 여행한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특히 남들이 찾아가기를 내키지 않아 하는 오지여행을 많이 한 사람이 갖는 공통적인 의견이 있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물질적 풍요를 누리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 속에 가라앉은 평화의 메시지가 여행자의 가슴에 진솔하게 전달된다고 합니다. 그들은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휠 대로 휜 삶의 질곡을 겪으며 처절한 가난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비틀거립니다. 그러나 행복지수가 소위 잘산다는 어느 누구보다 높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물질적 풍요와 비례해 점점 삭막해지고 광폭해지는 우리 사회의 불행한 모습을 그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수십 조각의 자투리 천을 이리 덧대고 저리 붙여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덧기워 아름다움을 창조해낸 조각보를 연상케 합니다. 그리하여 황제펭귄이 알을 품는 일처럼 자신의 삶을 서둘지 않고 정성껏 키워나가는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왔었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고니라고 알려진 쇠재두루미는 세계에서 가장 높이 나는 새로 일컬어집니다. 이 고니는 몽골의 철새로 인도에서 겨울을 보내기 위해 해발 8800m의 히말라야 에베레스트를 넘습니다. 때로는 장장 2400km를 날아와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보내기도 합니다. 5만 마리 이상의 고니는 매년 겨울이 다가오면 이 지구상에서 가장 도전적인 이동을 시작합니다.
고니가 인도에 있는 월동지로 가려면 히말라야의 높디높은 능선을 가로질러야 합니다. 사납고 난폭한 바람이 히말라야 산봉우리에서 짐승처럼 울부짖습니다. 이 폭풍을 피하려면 고니는 더 높이 날아야 합니다. 중도에서 전혀 예기치 못했던 난기류를 만나기도 합니다. 방향을 선회하여 역비행을 하지 않으면 죽을 위험도 감내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다시 몽골로 되돌아가거나 지상으로 내려앉지는 않습니다. 먹이와 물을 먹지 못해 쇠약한 상태가 되지만 높게 오르기 위해선 더 높은 상승기류를 타야 합니다. 상승기류에는 어리거나 쇠약한 고니를 노리고 길목을 지키는 포식자가 포진하고 있습니다. 바로 황금독수리입니다. 이들 포식자를 힘겹게 따돌리고 따뜻한 인도로 날아가는 고니 떼의 종족 보존을 위한 쓰라림과 고난의 드라마는 눈물겹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동안 크고 작은 시련은 끊임없이 계속됩니다. 우리의 인생에 고난과 질곡이 없다면 삶의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슴에 존재하는 열정과 창조적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는 한, 은총이 있음을 굳은 신념 하나로 믿게 됩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이웃을 배려하고 그들의 아픔에 눈 돌릴 수 있다면 자비 또한 존재할 것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도전에는 필경 은혜가 따른다는 사실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은 진리가 아니겠습니까.
김주영 소설가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