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국장급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다 붕 뜬 분위기
인사 타이밍 놓쳐… 경제위기 극복대책도 겉돌아
지난해 말 정계에선 청와대가 연말연시 일부 부처 장관 교체 등 개각과 고위공무원 인사, 청와대 조직개편을 한꺼번에 단행하는 큰 그림을 구상 중이라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나돌았다.
하지만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국회 사정이 복잡하게 꼬이면서 결정적으로 인사 타이밍이 흐트러졌다”고 전했다.
장차관, 1급 공무원 인사가 지연되면서 정부 주요 부처의 국정 공백은 심각한 상황이다.
1급 인사는 2, 3급의 연쇄적인 보직 이동을 동반하게 된다. 현 상황처럼 상급자 중 누가 바뀔지, 자신이 어느 자리로 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공무원들의 업무 집중도와 추진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고위 간부들은 일은 제쳐두고 ‘생존게임’에만 몰두하면서 관가 분위기가 상당히 흐트러져 있는 상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고위공무원들이 차기 인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엄청 뛰고 있다”고 말했다.
○ “할 일 많은데…”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말 이동훈 사무처장이 사표를 낸 뒤 일주일간 이 자리가 공석이다.
사무처장 자리는 주로 내부 승진 인사로 이뤄지는 점을 감안할 때 사무처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주요 실·국장의 거취도 크게 달라진다. 이 때문에 각 실·국은 선뜻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지난해 사업을 정리하는 수준의 업무를 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인사가 늦어지면서 업무 공백이 생기고 있다”며 “금융위기 상황에서 올해 새로 추진할 사업이 많은데 인사가 빨리 확정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농림수산식품부도 사표를 낸 1급 4명의 후임이 결정되지 않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조만간 농협개혁위의 개혁안이 발표되고 개혁이 가시화돼야 하는 상황인데 1급들이 사표를 낸 뒤 붕 뜬 분위기”라며 “하루빨리 인사가 마무리돼야 개혁이든 뭐든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1급 상임위원 자리가 빈 금융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요즘처럼 일이 많을 때는 고위 간부의 빈자리가 유독 커 보인다”며 “후임 인사를 해야 하지만 아직 청와대와의 교감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일부는 ‘바꾸는 시늉’만
쌀 직불금 파문이 한창인 지난해 10월 감사위원과 사무총장 등 차관급 7명을 포함한 1급 이상 12명 전원이 사표를 낸 감사원은 2일 차관급인 감사위원 1명과 1급 1명만 교체했다.
물러난 감사위원은 2월에 임기가 끝나게 돼 있어 사실상 12명 가운데 1급 1명만 바꾼 셈이다.
이번 ‘용두사미’ 인사로 다른 부처와 기관의 행정을 감시하고 정책적 잘못을 지적하는 감사원의 엄정성과 권위가 상처를 입었다는 게 안팎의 평가다. 특히 사표 사태의 발단이 된 쌀 직불금과 관련된 고위직은 대부분 자리를 지키거나 오히려 승진해 ‘일괄사표 제출’이 면죄부를 줬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이 때문에 감사원은 추가로 감사위원이 교체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1급 8명 전원이 사표를 낸 국무총리실도 감사원처럼 소폭 교체가 유력하다.
사표를 낸 고위직들이 여전히 업무를 보고 있는 총리실은 이달 중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 인사에서 기껏해야 1, 2명의 사표가 수리될 것으로 보인다. ○ ‘태풍’ 피한 부처들도 어수선
1급 일괄사표의 태풍을 피해간 부처들도 분위기가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다.
기획재정부는 장차관의 거취에 대한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1급을 포함한 고위공무원들은 인사 관련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올 초 1급인 권태균 무역투자실장이 사표를 낸 지식경제부는 “지경부 내 나머지 7명의 1급도 전원 사퇴하는 것 아니냐”는 다른 부처의 잇따른 문의전화에 곤욕을 치렀다.
지경부의 한 관계자는 “과천 공무원들이 일종의 ‘1급 집단 사퇴’ 노이로제에 걸린 것 같다”며 “빨리 부처 1급 인사가 마무리돼야 일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1급 대부분이 재외 공관장이라 무보직 본부대사 10명에게만 명예퇴직을 권고하고 사표를 받은 외교통상부는 동북아역사재단, 한-아세안센터의 두 자리를 제외하고 무보직 본부대사 자리를 아예 없앨 계획이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