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인터뷰]“어르신, 80세까지 함께 일해주시겠습니까?”

  • 입력 2009년 1월 8일 11시 08분


주식회사 남이섬 강우현 대표
주식회사 남이섬 강우현 대표
‘남이섬’ 강우현 대표 “돈보다 오래가는 것이 더 중요”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명예퇴직 감원 등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종신 고용제’를 도입한 기업이 화제가 되고 있다. 바로 강우현(56) 씨가 대표로 있는 주식회사 남이섬이다. 강 대표는 북한강 상류에 있는 남이섬을 관광명소로 키워 나가고 있다. 미술을 전공하고 동화작가로도 활동했던 그는 ‘현대판 피터팬’으로 불릴 정도로 독특한 상상력과 창의성을 발휘하며 나이를 잊은 꿈을 실현해 가고 있는 중이다. 직원 고용에 있어서도 남들에게는 꿈만 같은 일을 실현해 가고 있다. 추운 겨울 남이섬을 직접 찾아가 그와 함께 강변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강 대표는 지난해 12월 30일 5번째 종신직원으로 석성계(76) 씨를 선정했다. 전체 직원 120명 가운데 종신명예직원이 된 5사람은 80세까지 일하고 이 후에는 매달 80만원 씩 연금을 받게 된다.

강 대표는 2001년 부도 위기에 있던 남이섬에 취임해 연간 27만 명에 그쳤던 방문객 수를 2008년 180 만명 까지 늘렸다. 20억원에 그쳤던 매출은 150억원을 돌파했다. 입소문이 퍼지자 지자체와 기업들이 변화와 창조적 경영을 배우기 위해 남이섬을 찾고 있다.

-2001년 대표로 취임 하신 후 남이섬을 다녀간 관광객 수치가 급증하고 있다. 목표치는 얼마인가.

우리는 돈을 얼마를 번다든지 규모를 얼마나 키운다든지 하는 게 아니라 즐겁고 오래 일할 수 있는데 목표를 둔다. 우리 1차 정년이 55세이고 2차 정년이 80세인데 지금 스무 살 신입사원이 80세 정년까지 가려면 60년이 있어야 한다. 앞으로 60년이 더 지나게 되면 65년 설립된 우리 회사는 100년이 넘는 회사가 된다. 회사가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랫동안 함께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일시적인 성공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

-지난달 30일 5번째 종신직원으로 석성계씨를 선정했다. 종신 고용제를 어떻게 도입하시게 됐나.

영원불멸하는 회사를 만들려면 오랫동안 회사를 지켜나갈 사람들이 중요하다. 평생 회사에 봉직하고 기여했다면 회사에서 마지막까지 책임을 져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희는 정년을 1차 적으로 55세로 하고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남이섬과 함께 계속하고 싶은 분들은 80세까지 연장해 준다. 80세 까지 열심히 일하신 분들은 돌아가실 때까지 매달 80만원씩 연금처럼 지급한다. 작년에 네 분을 선정하고 올해 한 분 선정해 총 다섯 분이 종신명예직원이다. 호칭도 어르신이다.

-그 분들은 어떤 반응 보이시나.

그분들은 (좋아서) 사실 말을 잘 못한다. 주변 가족이나 마을에서 부러워한다. 보통 60세를 넘어 아파트 경비를 하면 70-80만원 받거나 못 받거나 하는 경우도 많다. 매달 용돈 80만원을 80세가 넘어서 받는 어르신들은 흔치 않을 것이다.

-선정 기준은.

객관적 기준이 있다가 보다는 회사에서 판단한다. 올해 선정되신 분은 10년 밖에 근무하시지 않았지만, 도자기 분야에서 전문가이다. 연세도 76세 최고령이지만 우리 남이섬의 마스코트로 존경을 받으셨던 분이고 그 분이 종신 직원이 됐을 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추대하게 된 것이다.

-60대 신입 사원도 있다. 입사 경쟁률이 대단할 것 같다.

공채는 60세 나이 제한을 두지만 그 이상 나이 든 분들도 들어오신다. 경쟁률은 높지만 진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1명이 와서 바로 채용 되는 경우도 있고 500명 지원해서 한명도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대표께서 가장 중시하는 인재 채용의 기준은 뭔가.

사람은 누구나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태어났다. 다만 회사라는 조직에서 어떤 일을 부여하느냐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을 평생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가끔씩 고령직원이 많아 능률이 떨어지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는 분들이 있다. 상어의 속도와 거북이의 속도는 다르다. 상어의 속도에 맞는 일이 있고 거북이 속도에 맞는 일이 따로 있다.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다고 말들을 하는데 과거부터 하던 일을 없애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새끼 꼬는 일, 땅을 돋우는 일, 울타리를 치는 일은 원래 그 일을 하던 사람들이 더 잘하기 마련이다. 회사에서는 그 직원에게 맞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 걸 우리가 잘 하고 있다고 본다.

-50대 이상 직원은 얼마나 되나.

38-40% 가까이 된다.

-60대 이상으로 보면?

30-35%. 과거부터 있던 분들이다. 구조조정이라고 하면 보통 정리해고를 말하는데 우리는 구조를 넓게 개편해서 일자리를 늘리는 걸 구조조정이라고 한다. 신입 사원이 들어와도 그 전에 계신 분들을 보호하기 때문에 고령자들이 적지 않다.

홍대 미대를 나온 그래픽 디자이너 겸 그림동화작가신데, 남이섬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

남이섬이 한참 어려울 때 디자이너가 남이섬을 맡으면 홍보가 되지 않을까 했다. 그랬더니 정말 디자이너가 남이섬 사장이 됐다고 신문에 났다. 취임 후 풀 한 포기 뽑지 않고 남이섬을 바꾸겠다고 했더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라고 했다. 황당하게 비쳤지만 그 것이 신비감으로 연결 되서 손님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디자이너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디자인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남이섬 대표로 취임하시고 제일 먼저 하신 일은 무엇인가.

첫 번째는 청소, 두 번째는 천막 등 알록달록한 유원지 특유의 것들 치우기였다. 그 다음 구석에 있는 작은 나무를 큰 나무 옆으로 옮겨 주는 등 조화롭게 자연의 재배치하는 일이었다.

한편 남이섬은 올해부터 5년간 중국 관광객 100만 명을 유치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밀리언 차이나 프로젝트’의 시동을 걸었다. 이를 위해 지난해 12월 18일부터 21일까지 베이징 국제창의문화엑스포에 1800평방미터의 공간을 확보해 남이섬을 재현시켰다. 이 곳에서 한류문화의 진원지 남이섬의 자연과 문화 및 국제교류 활동 등을 포함하는 다양한 창의관광 콘텐츠를 목표로 대대적인 출정식을 가졌다.

-중국 프로모션 상황은.

연말 12월 18-21일까지 베이징 국제창의산업박람회 참가를 했다. 중국 언론 매체 30개와 인터뷰를 했다. 목표는 중국인 1억 명 이상에게 남이섬 알리는 일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중국 예술가 1000명을 불러들여 작품을 만들게 하는 일을 계획 중이다. 중국인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남이섬에서 만나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새해에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다른 프로젝트가 있나.

매일매일 개인 홈페이지에 글을 쓴다. 개인적으로는 살아가는 부분에 대한 정리를 해 보는 것이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내가 하는 일에 공감하게끔 보여주고 싶다. 중국 관광객 100 만명 유치도 황당한 소리 같지만 그동안 제가 말한 내용은 거의 실현이 돼서 사람들이 믿어 주는 편이다.

-남이섬의 연혁이 궁금하다.

65년에 은행가인 민병도 선생이 퇴직을 하고 일대를 둘러보다가 섬을 발견하고 노후를 보내기로 하고 나무를 심었다. 이후 골프장을 했다가 망하고 40년 가까이 유원지로서 존재했다. 그러다 IMF가 터지면서 망하기 일보 직전까지 간 것이다. 회사가 어려워지자 디자이너라도 왔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오게 됐고 그때 와서 내걸었던 게 ‘유원지는 강변지로, 소음은 리듬으로, 경치는 운치로 바꾸자’고 했다. 술병은 꽃병으로, 쓰레기는 ‘쓸 애기’, 잡초는 화초로 그렇게 하나하나 바꿔갔다. 쓰레기를 재활용 할때 예술가들이 많이 참여했다. 이후 남이섬은 문화예술과 재생이 살아 숨쉬는 곳으로 각광받게 됐다. 2006년 3월 1일에는 가상의 문화 공화국인 나미나라를 선포해 문자와 화폐 등을 따로 만들고 한국 속의 외국의 이미지를 심고 있다.

-남이섬을 찾는 관광객 중 외국인과 내국인의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

작년 180 만명 가운데 20만 정도가 외국인이다.

-남이섬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나.

어렵고 안 어렵고는 별 의미가 없다. 모든 것은 한 문제 씩 그것을 풀었다는 것이다. 낙천적이라기 보다는 어려운 것을 다 기억하게 되면 (골 아프다.)

-집에서는 어떤 모습인가.

평범한 가장들과 다를 바 없이 그렇게 좋은 소리 못 듣는 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우리 아이가 아버지를 닮고 싶어한다. 우리는 서로간 잘 맞는다. 일전에 아들에게 아버지가 어떻게 남았으면 좋겠냐고 묻자 ‘아버지로서 남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치나 다른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누구의 사람으로 평가되지 말고 아버지 강우현으로서 남아 있길 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건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피터팬으로도 불리던데, 어떤 어린이였나?

지금도 7살 같은 기분이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 모험심 많고 겁이 없고 뭔가 하고 싶은 게 많고 꿈도 많은 모습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다. 가끔씩 누가 나이를 물어보면 8살이라고 한다. 53년생이니까 5더하기 3을 하는 것이다. 실제 나이를 굳이 물으면 53년생이니까 53살이라고 답한다. 원래가 나는 동화적인 것들, 책 속의 상상속의 것들이 현실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다.

겨울강가에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 남이섬을 거니는 강대표의 발걸음은 그러나 가벼워 보였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처럼 자신의 꿈을 거스르지 않고 사는 것, 즐겁고 오래 함께 일하는 것, 이 것이 그가 추구하는 목표였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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