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근영 언니처럼 우리도 기부천사 될래요”

  • 입력 2009년 1월 9일 22시 00분


9일 돼지저금통을 들고 광주의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전남지회를 찾은 전남 해남군 송지면 땅끝마을 공부방 아이들. 문근영 씨의 기부로 따뜻한 보금자리를 갖게 된 아이들은 버스비와 간식비를 아껴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저금통을 내놓았다. 광주=박영철 기자
9일 돼지저금통을 들고 광주의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전남지회를 찾은 전남 해남군 송지면 땅끝마을 공부방 아이들. 문근영 씨의 기부로 따뜻한 보금자리를 갖게 된 아이들은 버스비와 간식비를 아껴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저금통을 내놓았다. 광주=박영철 기자
문씨 도움받은 ‘땅끝 공부방’ 아이들 사랑의 성금 전달

9일 오후 광주 남구 서동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전남지회 사무실.

두툼한 점퍼 차림의 10대 청소년들이 쑥스레 웃으며 들어섰다. 성금 접수창구 앞에 선 이들은 "해남 땅끝에서 왔다"며 쇼핑백을 내밀었다. 쇼핑백에는 '이삭줍기'라고 쓴 빨간색 노란색 돼지저금통 2개와 도넛 모양의 저금통 1개가 들어 있었다.

이들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저희들이 먹고 싶은 것 안 사먹고 한푼 두푼 모았다"며 저금통을 하나씩 꺼냈다.

직원들이 저금통을 뜯자 10원, 50원, 100원짜리 동전부터 꼬깃꼬깃 접은 1000원짜리 지폐가 탁자에 수북하게 쌓였다. 모두 35만8670원이었다.

●공부방을 살린 '기부천사'

온정이 가득한 저금통을 들고 온 이들은 전남 해남군 '땅끝 공부방' 아이들.

공부방은 엄마나 아빠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자란 아이들과 장애우 등 40여 명이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숙제도 하는 소중한 보금자리다.

이들이 '기부천사'가 된 것은 영화배우 문근영 씨 때문이다.

배요섭(53·땅끝 아름다운교회 목사), 김혜원(43) 씨 부부가 2002년부터 꾸려온 공부방은 3년 전 세든 건물이 매각되면서 쫓겨날 위기에 놓였다.

당시 중년 여성이 찾아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으니 적당한 땅을 찾아 달라"고 말하고 돌아갔다. 두달 뒤 다시 찾은 그는 "근처 땅을 매입했으니 그 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으면 좋겠다"며 매매계약서를 내밀었다. 배 씨 부부는 계약서에서 '문근영'이라는 이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이 여성은 문 씨의 어머니였다.

문 씨가 기부한 3억 원(땅값 7000만 원 포함)으로 공부방은 도서관, 컴퓨터실, 목욕탕, 식당은 물론 통학차량까지 갖춘 '지역아동센터'로 새롭게 태어났다. 지난해엔 공부방을 찾은 문 씨와 함께 공놀이를 하고 피자를 먹기도 했다.

●'우리도 문근영 언니처럼….'

그 후 땅끝 공부방 아이들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저금통 모금을 시작했다.

중고생들은 1주일에 한두 번씩 학교에서 공부방까지 6㎞를 걸어 다니며 버스 요금을 모았다. 정신지체 2급인 최성주(15·송지중 3년) 군은 이름도 제대로 쓸 줄 모르지만 아침에 받은 버스비를 저금통에 넣기 위해 10리가 넘는 길을 걸어다녔다. 초등생들도 간식비와 용돈을 아꼈다.

아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저금통은 가득 차갔다. 아이들의 이번 기부는 2007년에 이어 두 번째.

유수아(15·송지중 2년) 양은 "근영이 언니 덕분에 전보다 훨씬 따뜻한 공부방에서 지내고 있다"며 "많지 않은 액수지만 홀로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따뜻한 겨울을 났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공부방 아이들의 선행은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독지가들이 보내온 쌀로 떡을 만들어 경북지역의 한 노숙자쉼터에 보내기도 했다.

아이들의 '엄마'로 불리는 김혜원 씨는 "아이들이 저금통에 돈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해 한다"며 "한 사람의 기부가 삭막한 세상에 나눔이란 소중한 씨앗을 뿌렸다"고 말했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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