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 짜깁기 지적하자 “내가 직접썼다” 반박
10일 허위사실 유포혐의로 구속된 ‘미네르바’ 박모 씨는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고, 이를 짜깁기해 글을 써온 전형적인 ‘인터넷 의존형’ 기고가였던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박 씨의 글이 생소한 경제용어를 곳곳에 섞어놓은 탓에 전문적인 식견을 갖췄거나, 남들이 모르는 대단한 정보를 갖고 쓴 글로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인터넷에 떠다니는 공개정보와 전문가들이 내놓은 전망을 재가공했을 뿐이라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박 씨는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은둔형 외톨이’ 범죄자는 아니라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검찰에 체포될 당시에는 직업이 없었지만 전문대를 졸업한 뒤 직장생활을 하는 등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직업이 없는 동안에는 매일 상당 시간을 인터넷 서핑이나 채팅을 하며 지내는 등 생활의 대부분을 인터넷에 할애했다고 한다. 책을 통해 경제학을 독학하기는 했지만, 검찰이 자택을 압수수색했을 때에 경제학 관련 서적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는 일반인들이 잘 찾지 않는 경제 관련 사이트나 블로그를 수시로 드나들며 인용할 만한 문구를 찾은 뒤, 이를 짜깁기하고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인터넷에 띄웠다.
박 씨의 예측이 맞아떨어진 대표적 케이스로 꼽히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전망도 실상은 외신의 경제뉴스 등을 베껴놓은 수준이라고 검찰은 전했다.
박 씨는 ‘미네르바’ 필명으로 올린 글에서 수차례에 걸쳐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했으며, 금융기관 관계자 사이에 통용되는 은어나 전문용어도 간간이 사용했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그 같은 전문용어나 정보도 모두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박 씨는 인터넷에서 정보를 모으고 글을 쓰는 일에 취미 이상의 집착을 보였다고 한다. 박 씨의 변론을 맡고 있는 박찬종 전 의원은 “박 씨는 국내외 경제상황이 자신이 예상한 대로 흘러가자 ‘미네르바’ 활동에 큰 재미를 느끼고 점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씨에게는 인터넷에서 모은 정보와 남의 글을 짜깁기하는 일이 표절이라는 의식이 없었다. 박 씨는 10일 구속영장이 발부된 직후 ‘짜깁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내가 직접 썼다. 소신대로 썼다”고 말했다.
박 씨는 내성적 성격 탓에 자신이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나 지식에 대해 다른 사람과 토론을 벌이는 등 의견을 나눈 흔적은 전혀 없었다. 자신이 진보성향 시민단체의 회원이라는 일부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씨는 10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실시간으로 1대1 소통이 되는 인터넷 매체의 특성상 정제되지 않은 표현을 썼는데, 오프라인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혼란이 일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익명의 그늘 속에 숨을 수 있는 온라인 공간과 자신의 글에 무한책임이 따르는 오프라인 간의 괴리를 뒤늦게 실감했다는 뜻이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