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일자리’얻어 제2의 인생 살아
“힘들 것도 없어. 재미있기만 한데 뭐.” 12일 경기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국수전문점 ‘잔치하는 날’에서 일하는 민경순(68) 할머니의 얼굴에서 힘든 표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기계에서 국수를 뽑고 홀에서 서빙하는 일이 젊은이들에게도 쉽지 않지만 시종 환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민 할머니가 일하는 ‘잔치하는 날’은 지난해 11월 초 문을 열었다. 경기 안양시니어클럽의 첫 자체 사업이다. ‘잔치하는 날’의 직원은 총 15명. 모두 60대 후반에서 70대 중반의 노인들이다. 이들은 일주일에 3, 4일 정도 출근해 하루 5시간 정도 일한다.
안양시니어클럽 정미선 팀장은 “30m²도 안 되는 작은 식당인 데다 경기도 어렵지만 한 달에 500만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며 “올해 매출 목표는 8000만 원 정도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 최대 장점은 연륜
경기침체가 심각한 가운데 이처럼 경기지역 시니어클럽의 ‘작지만 눈부신’ 성과가 눈길을 끌고 있다.
일반 회사에 비해 아직 걸음마 단계인 곳이 많지만 단순한 일자리 제공 기관을 넘어 어엿한 기업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는 곳도 적지 않다.
시흥시니어클럽은 2006년 경비인력업체인 ‘시니어인력뱅크’를 설립했다. 퇴직 교사나 공무원, 회사원 출신의 노인들이 이 회사를 통해 학교 경비원으로 일한다.
창업 첫 해 인력을 파견한 학교가 19곳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32곳으로 늘었고 올해는 45곳까지 늘릴 예정이다.
시흥시니어클럽은 이 사업 외에도 ‘화환 재사용 방지 사업’ 등 틈새시장 공략을 통해 지난해 8억 원의 총매출을 올렸다. 올해 총매출 목표는 12억 원이다.
부천시니어클럽도 베이비시터 파견사업인 ‘까르르 잼잼’을 통해 지난해 2억 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이 밖에 성남, 안산, 부천 등지의 시니어클럽들이 실버택배, 유기농 두부공장, 할인점 도우미 같은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렇게 경기지역 9개 시니어클럽에서 총 1400여 명의 노인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시니어클럽의 성과가 알려지면서 일반 기업들의 참여도 활발하다.
웹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은 성남시니어클럽과 함께 노인들로 구성된 모니터 사업단을 운영하고 있다. 또 대한통운, 현대택배 등은 안양시니어클럽을 통해 노인들을 아파트단지 내 배송 인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 공격적 경영으로 위기 극복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니어클럽이 선택한 것은 바로 공격적인 사업 확장이다.
시흥시니어클럽은 올 상반기에 연(蓮)을 재료로 한 빵공장을 통해 먹을거리 사업에 진출한다. 안양시니어클럽도 국수전문점의 2호점 개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경비, 베이비시터, 자원재활용 등 3개 사업의 표준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이 작업이 마무리되면 지금처럼 한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경기 전역에서 본사와 지사처럼 네트워크를 이루게 된다. 시니어클럽 간 사업연대는 이번이 첫 시도다.
이에 따라 경기도는 올해 시니어클럽을 4, 5곳 정도 늘리고 사업성과가 큰 곳에는 연간 최대 2억 원까지 지원할 방침이다.
::시니어클럽::
일정한 시설과 교육인력을 갖춘 뒤 지역사회 맞춤형 사업을 통해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2001년 노인복지법 등에 근거해 시작됐다. 지방자치단체의 위탁을 받은 민간단체가 운영하며 전국에 50여 곳 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