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속 대형선박 완공 기쁨도 잠시…

  • 입력 2009년 1월 16일 02시 58분


8명이 숨진 부산 영도구 노래주점 화재 현장에서 15일 한국전기안전공사,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등으로 구성된 합동감식반원들이 정밀 감식을 벌이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8명이 숨진 부산 영도구 노래주점 화재 현장에서 15일 한국전기안전공사,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등으로 구성된 합동감식반원들이 정밀 감식을 벌이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 부산 노래방 화재사건

시운전 성공후 가진 직원격려 회식자리서 참사

감식반 “방화-실화 가능성” 경찰은 “누전인 듯”

15일 부산 영도구 노래주점 화재 희생자 8명의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동구 초량동 인창병원. 오전부터 유가족들의 오열과 통곡이 이어졌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유가족들은 넋을 잃거나 바닥에 쓰러졌다.

분향소를 찾은 희생자들의 회사 동료인 부산 진세조선 임직원도 하루 종일 침통한 모습이었다.

▽“조선 불황 속 선박 건조 회식이었는데”=고 강상대(43) 이사의 후배는 “세 살 난 딸 돌잔치를 못해 줘 5개월 된 둘째 아들 돌잔치는 꼭 해주고 싶다고 말했는데 이렇게 돌아가시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고 김종훈(43) 상무의 부인(42)은 실신해 링거를 맞은 상태로 남편의 영정을 바라봤다. 그는 “남편 좀 깨워주세요. 절대 안 보낼 거예요”라며 오열했다. 화재가 났던 14일 오후 “오늘 회식이 있다. 아이들에게 안부 전해줘”라는 전화 통화가 남편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희생자들은 사고 전날 조선업 불황 속에서도 사운을 걸었던 대형 선박의 건조를 축하하는 회식에서 목숨을 잃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13일 3만 t급 선박 시운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을 축하하고 그동안 격무에 시달린 생산관리본부 소속 임직원을 격려하기 위해 고 신현태(64) 조선소장(사장급)이 마련한 자리였다. 신 조선소장은 지난해 11월 한 대형 조선소에서 이곳으로 영입됐다.

회사 관계자는 “희생자 대부분이 회사를 키우기 위해 지난해 대기업과 경남 거제의 자회사에서 옮겨왔거나 회사 핵심인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며 “어려운 경제 상황이지만 잘해 보자고 다짐했던 자리에서 이런 일이 생겨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조선소 측은 이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는 한편 희생자들에게 위로금을 전달하기로 했다. 장례는 5일장의 회사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화재 원인 논란=화재 원인으로는 누전을 비롯해 누군가의 실수, 방화 가능성이 제기됐다. 소방당국, 전기안전공사,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등으로 구성된 합동감식반은 이날 현장 감식에서 처음 연기가 치솟은 6번 방을 조사했다. 화재 당시 희생자들은 옆방인 7번 방에 있었다.

감식반 관계자는 “6번 방 천장에서 연소 흔적과 백화현상(화재 초기 강한 열을 받아 하얗게 변한 현상)이 발견된 점 등으로 볼 때 소파 부근에서 불이 시작됐다”며 “하지만 소파 뒤편엔 전기시설이나 설비가 없어 방화나 실화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경찰은 “누전으로 환풍기에 불똥이 튄 뒤 소파로 떨어졌거나 타들어간 환풍기 모터 일부가 소파에 떨어져 불이 난 것으로 보인다”라는 의견을 내놨다.

이에 따라 경찰은 정확한 화인 분석을 위해 화재 직전 노래주점을 드나들었던 출입자를 불러 당시 행적을 조사했다. 건물주와 주점 업주, 화재 당시 불이 난 상황을 희생자에게 알렸던 종업원도 불러 과실 여부를 조사했다.

경찰은 “희생자들의 사인은 유독성 연기를 마신 데 따른 질식사”라며 “노래주점이 있던 건물은 지난해 화재보험을 갱신하지 않아 지금은 보험계약이 해지된 상태”라고 밝혔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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