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청장 “사퇴계획 없다” 5시간만에 “마음 비웠다”

  • 입력 2009년 1월 17일 02시 57분


■ 전격사의 배경 있나

특정세력 비호說 등 파문 확산 우려한듯

여권관계자 “靑에서 강하게 요구했을 것”

韓청장 “국정운영에 부담되기 싫어 결심”


한상률 국세청장이 ‘그림 상납’ 의혹이 제기된 지 3일 만인 15일 청와대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 13일 일본 방문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하던 한 청장이 취재진의 질문 공세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그림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한상률 국세청장이 “사의를 표명할 계획이 없다”고 말한 지 불과 5시간 만에 태도를 바꿨다.

한 청장은 무슨 이유 때문에 5시간 만에 마음을 바꾼 것일까.

한 청장은 15일 오후 4시경 김경수 국세청 대변인을 통해 “사의를 표명한 사실이 없으며 표명할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흔들림 없이 국세 행정을 운용하는 것”이라며 사퇴설을 일축했다. 일부 언론이 이날 오후 3시 반경 “한 청장이 사의를 표명했다”는 보도를 내보내자 30분 만에 강하게 반박한 것이다.

하지만 한 청장이 당일 오후 9시 김명식 대통령인사비서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의를 표명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16일 전했다.

한 청장과 청와대 모두 사퇴를 늦출수록 상황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한 청장이 물러날 뜻이 없다고 밝힌 직후 청와대 관계자는 “한 청장이 저렇게 버티는데 우리가 별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당분간은 사퇴하지 않을 것이다. 진상 규명에 시간이 걸린다”고도 했다. 청와대는 그때까지만 해도 한 청장의 뜻에 맡기겠다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였다.

하지만 이후 한 청장과 가깝다고 알려진 실세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이들이 ‘그림 로비’에 연루됐다는 소문이 청와대 주변에 퍼지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은 한 청장을 특정 세력이 비호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한 청장의 거취를 둘러싸고 친이(친이명박)세력이 다시 권력 투쟁에 들어갔다는 분석도 나왔다. 의혹의 불똥이 청와대와 일부 실세 그룹으로 옮겨 붙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더 놔뒀다가는 청와대와 여권 전체가 ‘그림 로비’ 의혹에 빠져들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청와대가 결국 한 청장에게 조기 사퇴를 강하게 요구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한 청장도 온갖 ‘설(說)’들이 급속히 퍼지던 5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 청장은 16일 간부들에게 자신의 사퇴에 대해 “무거운 지게를 지고 가다가 벗어놓은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하다”면서 “의혹 때문도 아니고 불순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대로 가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사퇴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정치적 배경이 없는 사람이 일만 열심히 했는데 더 열심히 하려다 보니 이렇게 됐다”며 일부 실세와 친분이 있다는 일각의 얘기들을 우회적으로 부인했다.

국세청 안팎에서는 사의 표명을 계속 미룰 경우 정부와 국세청 조직에 큰 부담이 되는 것은 물론 본인에게도 득이 될 게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청장 직을 유지한 채 검찰 수사에 응할 경우 정부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부담을 많이 느끼면 느낄수록 검찰 수사 과정에서 ‘괘씸죄’가 추가될 가능성도 그 만큼 커질 수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한 청장이 5시간 만에 마음을 바꾼 것에 대해 “언론 보도가 나왔을 당시에는 사의 표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관계를 밝힌 것일 뿐”이라며 “빨리 사의 표명을 할 경우 의혹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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